잘했어, 정말 고마워!

사자왕 형제의 모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by 은진


자기와 닮은 사람을 한눈에 알아본다고 했던가. 오랜만에 집어 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동화책에서 칼이라는 소년을 만났을 때, 나는 금세 그를 알아보았다. 반가움은커녕 묘한 안쓰러움이 밀려왔고, 자연스레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그 소년은 『사자왕 형제의 모험』속의 칼이었다. 무언가를 시도하기 전에 망설이고, 용감한 형의 뒤를 따라다니며 불안한 눈빛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이 마치 어린 시절의 나를 연상케 했다.


어린 시절, 나는 조용하고 소심한 아이였다. 똑똑한 친구들, 믿음직한 동생들 틈에서 늘 무난하고 평범한 존재로 머물렀다. 두드러지는 점이 없다는 사실은 아쉬움으로 남았고, 성실함 하나로 버텨냈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왜 나는 이렇게 부족할까?'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그랬던 탓인지, 요나탄의 말이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형, 무섭지 않아?"
"아무리 위험해도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밑줄을 긋고 한참을 되새겼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고 싶은 의미를 발견한 것 같았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단호한 그의 태도에서 그만 전율했다. 역시 요나탄은 '사자왕'이라는 별칭에 걸맞은 인물이었다.

그렇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요나탄이 아니라, 겁 많고 흔들리기 일쑤인 칼이었다. 그는 형의 이 말을 곱씹으며 두려움에 맞섰고, 점차 자신감을 찾아간다.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가능성을 드러낸 칼의 모습은 쓸데없이 마음 쓰며 지켜보던 내 불안을 잠재웠다. 그의 변화 과정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그 덕분에 잊고 지냈던 한 조각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날 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유난히 어두웠다. 늦게까지 공부했다는 뿌듯함도 잠시, 버스에서 내리고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굳어버렸다. 외딴곳이던 우리 집이 그날따라 더 멀어 보였다. 길가의 컴컴한 숲에서는 당장이라도 무언가 튀어나올 것 같았고, 목덜미가 누군가에게 움켜잡히는 듯한 섬뜩한 기분마저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겁에 질려 울며 뛰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치며 온몸을 감싸고 지나갔다. 어둠 속에서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 걸음씩 내디뎠다. 그렇게 30분쯤 걸었을까. 멀리 우리 집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보였다. 그 순간, 안도감과 함께 묘한 자신감이 차올랐다. 두려움을 견디고 이겨냈다는 작은 성취감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조금씩 달라졌던 것 같다. 어둠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 법을, 두려움을 견디는 법을, 그리고 울지 않고 앞으로 나가는 용기를 배웠다.

이제는 어른으로 살아온 시간이 제법 흘렀다. 그런데도 가끔은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는 순간을 만난다. 특히 책 속에서 그런 순간이 자주 찾아온다. 주인공과 비슷한 나이쯤으로 보이는 아이를 발견하고, 곧 그 아이가 어린 시절의 나라는 걸 깨닫는다. 숨기거나 모른 척했던 내 그림자를 이해하고 다시 보니 기대하지 못한 기쁨이 밀려왔다.

"잘했어. 정말 고마워!"

울지 않고 걸어갔던 그날의 나에게, 그리고 어린 시절의 나와 닮은 칼에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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