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조한 문장 속에서 감정 읽기
요즘은 글쓰기가 쉽지 않다. 한때는 하루 종일 써도 지치지 않았다.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책상 앞에 앉아 써 내려가는 일이 나름의 힐링이었다. 아이들과의 대화 한 마디, 시골집을 지키는 길고양이, 아파트 현관에서 마주치는 이웃까지, 모든 게 글감이 됐다. 그런 글을 쓰는 나 자신도 제법 괜찮아 보였다.
그런데 이제는 첫 문장조차 오래 붙잡고 헤맨다. 마음을 다잡고 쓰려하면, 괜히 다른 일부터 하게 된다. 책상 정리를 하거나, 서랍 속을 뒤적이며 보이지 않는 것을 찾는다. 마음을 아예 딴 데로 돌려, 글과 마주치지 않으려 애쓸 때도 있다. 예전엔 있는 그대로 받아주던 친구 같았던 글쓰기가 요즘은 자꾸 어긋난다.
처음 브런치에 글을 올렸을 땐 제법 들떴다. 누가 읽긴 할까 싶었지만, 혼자 괜히 뿌듯했다. 책 한 권쯤은 금방 나올 줄 알았다. 실제로 책도 냈다. 지금 생각하면 민망한 부분이 많지만, 끝까지 써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자랑스럽다.
하지만 책을 낸 뒤엔 오히려 막막해졌다. 한 권이 나오면 다음 이야기도 자연스레 따라올 줄 알았다. 수월해질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주저하게 됐다. 어떤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망설이다 보니 쓰면 쓸수록 더 낯설고 어려운 상대가 된다.
그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다. 『소망 없는 불행』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람의 불행이 소망조차 없이 펼쳐지는 거지. 궁금했다. 역시 초반부터 무거웠다. 냉동실에서 막 꺼낸 것처럼 차디찬 문장들이 가득했다. 이 책, 왜 이러지?
슬프다는 말은 한마디도 없었다. 그런데 묘하게 서글펐다. 무심한 듯 건조한 문장 사이로 어머니로 보이는 투박한 여자가 등장한다. 외로워 보였다.
『소망 없는 불행』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 작가가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며 시작된다. 사라지기 전에 붙잡고 싶은 감정이나 기억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끝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찰자처럼 담담하게, 때론 냉정하게 기록한다. 너무도 개인적인 존재인 어머니를 마치 불편한 타인처럼 다루는 문장들이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어머니도 불행을 선택하진 않았을 텐데. 그에겐 그조차 설명할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의심은 새로운 해석을 향하게 한다. 두 번째 읽을 땐 문장 하나하나를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제야 보였다. 어머니를 제3자처럼 바라보려는 그의 시선에는, 오히려 말로 다 전할 수 없는 애틋함이 숨어 있었다. 평생 표현이 어색했던 두 사람. 그 건조한 거리감 속에는 말하지 못한 것들이 담겨 있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도, 충분히 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신선했고, 인상 깊었다.
나도 그런 방식으로 한 번 써볼까 싶었다. 실천력이 생긴 걸까. 좋아 보이면 따라 하고 싶어지는 법이다. 감정을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보면 더 깊이 전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을 빼고 절제하며 써보았다. 당연히 어색했고, 폭망에 가까웠다. 어찌나 민망한지 쓴웃음이 절로 났다.
감정을 덜어낸 글은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시도 덕분에 다시 글 앞에 앉게 됐다. 어쩌면 중요한 건 완성보다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다시 마주 앉는 일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