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읽는 막장 소설-윌리엄 호가스의 결혼 세태

4화 몸단장

by 김은진

그림 : 윌리엄 호가스

분류 : 그림으로 읽는 막장 소설

제목 : 결혼 세태(Marriage a-la-Mode)(총 6화)

배경 : 18세기 런던

등장인물 : 스퀀더필드 백작부부, 실버텅 변호사, 오페라 가수, 플루트 연주자, 귀부인, 하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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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 몸단장 (The Toilette)


얼마 전 스퀀더필드 백작이 세상을 떠나고 젊은 스퀀더필드 자작 부부는 아버지의 작위를 물려받아 백작부부가 되었다. 자작 부부는 부모 잘 만나서 노력 하나 없이 신분 상승을 한 것이다. 침대와 화장대 위에 보이는 작은 왕관 모양의 장식이 이들 부부가 백작부부가 되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백작부부의 사치와 방탕은 극에 달한다.


귀족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아침 기상 의식'을 행하는 것이 그중 하나이다. '아침 기상 의식'이란 프랑스 루이 14세가 아침에 일어나 몸단장하고 식사를 할 때 주요 인물들만 초대해서 자신이 옷을 갈아입고 식사하는 장면을 보도록 했던 의식이다. 최신 유행을 달렸던 루이 14세가 어떤 치장을 하고 무슨 음식을 먹는지가 당시 유행을 따라가는데 중요한 척도가 되었다. 영국 귀족 사회에서는 프랑스를 은근 무시하면서도 이런 의식 자체가 자신의 부와 신분을 과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다. 스퀀더필드 백작 부인은 지극히 사적인 공간인 침실에서 아침마다 이런 모임을 갖는 것을 즐겼다.


조금 살집이 오른 백작부인은 이미 화사하게 화장을 마쳤다. 볼이 발그스레해진 부인은 바로 앞에 있는 실버텅을 보면 미소가 저절로 나온다.


"오늘따라 더 우아하고 아름다우십니다." 역시 실버텅이다.


"고마워요. 변호사님도 오늘 머리가 보기 좋으세요."


한쪽 팔을 의자에 걸치고 여유 있게 앉은 백작부인의 관심은 오로지 실버텅에게 가 있다. 백작부인 의자 등받이에 늘어져 있는 붉은 끈에 달린 산호 조각이 눈에 띈다. 아기가 젖니가 날 때 입에 물고 노는 것인데 백작부인은 이미 아이를 낳은 엄마로 육아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어떡하면 즐길까만 생각 중이다.


스위스인 시종이 뒤에서 그녀의 머리를 말아주고 있다. 시종은 '저기 침실 벽에 실버텅 변호사의 초상화까지 걸어 놓다니 이 둘 분명 수상해.'라고 생각한다. 아니나 다를까, 실버텅은 소파 위에 떡하니 양발을 올려놓고 자연스럽게 옆으로 기대앉아 있다. 매우 익숙하고 편안해 보인다. 자기 침실인 양 드나들었을지도 모른다.


실버텅은 남들이 들을까 염려되어 한 손에는 가면무도회 초대장을 보여주고 한 손으로는 가면무도회 그림을 가리키며 눈짓으로 함께 가자고 백작부인을 유혹하고 있다. 백작부인도 가면을 쓰면 아무도 몰라볼 테니 가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벌써부터 설렌다. 실버텅의 발치에 '소파:도덕 이야기(The Sofa : A Moral Tale)'라는 책이 보인다. 상류층 사람들의 성도덕을 풍자한 프랑스 삼류 소설로 이 두 사람의 불륜 관계를 아는 누군가가 일부러 갖다 놓은 것이다.


아내와 실버텅의 관계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스퀀더필드 백작은 다리를 꼬고 앉아 핫 초콜릿을 마시고 있다. 신대륙에서 얼마 전에 도착한 최상품 중의 최상품이다.

'핫 초콜릿 역시 향도 맛도 달달하니 좋군'


백작 역시 머리카락을 하얀 종이로 돌돌 말아 놓고 보기 좋은 컬이 생기기를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어디로 가 볼까?' 항상 놀 궁리만 하는 백작이다.


풍채 좋은 이탈리아 오페라 가수인 조반니가 한창 노래 중이다. 변성기 전에 거세를 해서 남자이지만 여자의 음역대인 소프라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조반니는 나이가 들수록 계속 비대해지고 있어 걱정은 하면서도 성량에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어 평소 '아침 기상 의식' 참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백작부인 방에 들어와 좋아하는 신화 이야기가 담긴 그림을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제우스가 아름다운 소년 가르메데스에게 반해 독수리로 변신해서 그를 납치하고 강간한다는 내용을 담은 그림이다. 뭐 이런 그림을 좋아하나 싶지만 사실 조반니는 동성애자이다. 오뚝 솟은 큰 코를 벌름거리며 입을 크게 벌려 열창 중인 가수의 귀걸이와 손가락에 낀 반지들이 어느 여인네들보다 화려하다. 가수는 오늘 데리고 온 독일인 플루트 연주자가 마음에 드는 모양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목소리가 아름답다.


그 소리에 취한 듯 흰 드레스를 입은 귀부인은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하다. 조반니의 광팬인 부인은 오늘 이 자리에서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꿈만 같다. 흑인 시종이 핫초콜릿을 권하지만 음악에 취해서 눈마저 풀려버렸다. 조반니에게 자기 좀 봐 달라고 과한 제스처를 취하지만 조반니가 관심을 줄 리가 없다.


백작 옆에서 핫초콜릿을 마시고 있는 백작의 친구는 백작부인의 그림 취향이 고상함과는 거리가 멀고 매우 외설적이라고 생각한다. 화장대 위 벽에 있는 그림들이 특히 그랬는데 하나는 <롯과 그의 딸들(Lot and His Daughters)>로 근친상간을 보여주는 그림이고 <주피터와 이오(Jupiter and Io)>는 모래언덕에서 회색 연기로 변한 주피터가 아르고스 지방의 공주 이오를 유혹한다는 내용의 그림이다. 백작부인과 실버텅의 관계가 소문만은 아닐 것이라 짐작한다.


백작은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게임 카드와 초대장들을 보며 아내가 카드 게임에 단단히 빠져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한편, 백작부부는 온갖 골동품을 비롯한 장식품들을 사모으는 것에 혈안이 되어 있다. 집안 재정은 어떻게 되든 품격을 유지하기 위해 신상품을 집안에 구비하는 것에 관심이 대단하다. 흑인 하인은 주인의 명에 따라 얼마 전 도착한 장식품들을 정리하고 있다.


'이게 다 뭐에 쓰는 물건들 이래'


하인은 다른 물건들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악타이온(Actaeon) 동상을 손에 들고 웃음 짓는다. 얼마 전 알게 된 악타이온 그리스 신화 이야기가 생각 나서다. 역시 아는 만큼 관심이 가는가 보다. 악타이온은 사냥꾼으로 여신 아르테미스가 목욕하는 것을 훔쳐보다 그 벌로 사슴으로 변하게 되고 자신의 사냥개들에게 물려 죽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나도 백작부인과 실버텅이 한 짓들을 다 봤는데.'

신화는 신화이고 주인마님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스릴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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