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희미해지기 전에 남겨두는 오래 묵은 여행 얘기
on Thursday 7 JUN 12
leaving from Santiago
길에서 만난 이완과 엘사는 우리보다 하루를 더 산티아고에서 머물기로 했다. OH는 떠나기 전날 밤 그녀들에게 내일 아침 커피를 함께 하자고 했다.
이완과 엘사는 병원을 다녀온 OH에게 신발도 빌려주고 샤워장에서 발 때문에 다소 시간이 길어져 기다리고 있던 한 여자가 OH에게 시비를 걸었을 때 OH를 대신해 싸워주었다. 이것저것 언니들처럼 배려해주고 신경을 써준 것이 고마워 OH는 떠나기 전에 커피라도 꼭 사고 싶어 했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함께 커피를 마시기로 했다. 카페 주인에게 택시를 불러달라고 부탁하고 서로의 다음 여행의 행선지와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들을 나눴다. 이제 택시가 와서 우리를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오질 않는다.
“여기 스페인이야. 제시간에 택시가 오겠니? 더 앉아있어.”
이완은 느긋하게 기다리라고 재차 말했다.
기차역까지 멀지는 않지만, 출근 시간이라 어떤 변수가 있을지 몰랐다.
그 후에도 택시를 밖에서 기다리려고 하면 이완은 스페인 타령을 했다.
“헤이 걸들, 여기 스페인이라니까. 한 참 더 있어야 해.”
“이완, 우리에게는 시간이 20분밖에 남지 않았거든. OH의 발이 아파서 빨리 걸어갈 수도 없다고.”
조마조마하게 택시를 기다리면서 스페인 타령을 좀 더 주고받아도 우리가 부른 택시는 오지 않았다. 기차 시간 10분을 남겨놓고 도저히 기다릴 수가 없어 지나가는 아무 택시나 잡자며 일어섰다. 밖은 비가 오고 빈 택시는 없었다. 이완은 끝까지 ‘기차역 가깝더구먼. 들어와서 기다려.’를 외쳤다. 그때 우리가 부른 택시가 왔다.
기차표를 보여주었더니 출발 시각을 보고 깜짝 놀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앞의 차들이 속도를 내지 못한다. 운전대를 놓고 양손을 벌리며 '어우 불가능하다'는 제스처를 연발한다. 어쩔 수 없이 이완과 엘사와 함께 산티아고에 하루 더 머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는 순간 이 운전사가 신호위반을 무릅쓰고 마구 달린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이미 운전사에게는 크나큰 사명감이 생긴 것 같은 표정.
놀랍게도 정확한 시간에 도착. 고마워서 팁을 두둑이 주고 플랫폼으로 뛰어들어갔다. 기차가 없다. 시간을 보니 정확히 출발시각.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기차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이 보인다. 역 내 시계를 보니 2분 전, 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렇게 정신없이 스페인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