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플랫화이트'부터'유메이크미'카페모카까지 / Editor. 녕
"I'm space filled with loging for Melb. plz come and fill me up, then u make me"
/ 카페 유메이크미
엄마는 매일 한두 잔의 커피를 꼬박 마셨다. 어떤 제재 없이 커피를 스스로 마실 수 있게 된 성인이 되고 난 후로부터 나도 매일 손에 커피를 들고 다녔다. 오죽하면 같이 기차여행을 떠났던 친구가 '쟤는 손에 1리터짜리 커피 한잔만 쥐어주면 하루 종일 어떤 불평도 없을 거야'라고 할 정도로 나는 매-일, 꼬박꼬박 커피를 마셨다. '세상을 망치러 온 구원자'라는 문장을 볼 때마다 나는 내가 마셔온 커피들을 생각한다. 음, 너는 나의 위장을 송두리째 망쳤지만 나의 마음은 구원했지 라고 중얼거리면서.
워킹홀리데이 국가를 뉴질랜드로 결심했던 이유도 딱 하나였다. 플랫화이트의 시작이 호주와 뉴질랜드였는데, 이미 호주로 떠난 이들이 많았기에 나는 뉴질랜드로 떠났다. 뉴질랜드에 도착한 지 3개월 정도 지났을까, 몇 번의 고배를 마시긴 했지만 운이 좋게도 키위가 운영하는 로컬카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바리스타를 할 수 있었던 건 아니었다. 주문부터 만드는 방식까지 모두 새로 배워야 했고, 언어도 서툴러서 식기세척기 하나도 제대로 못 다루는 바보로 첫 3개월을 지냈다. 그도 그럴 것이 '손님이 직접 가져온 코코넛 밀크에 샷 2개, 헤이즐넛 시럽 2 펌프 반, 엑스트라 시나몬 파우더 뿌린 라떼 라지(large) 개인 텀블러'가 한잔의 주문이었다.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 카페일은 오후 4시까지 이어지고 수많이 손님들이 오가며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 주문은 그중 단지 딱 한 명의 주문일뿐이다. 그러니 롱 블랙에 타이거 무늬가 없다는 이유로, 플랫화이트에 라떼만큼의 폼을 올렸다는 이유로, 스팀밀크에 온도계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이유 등등 등등으로(이게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저런 이유로 커피맛이 달라진다.) 수도 없는 커피를 버려야 했다. 이 정도면 커피가 징글징글해질 법도 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꼬소한 플랫화이트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 곳곳의 카페에 들어가 개성 있는 바리스타들이 내려주는 모든 커피 한잔 한잔은 타지 생활의 큰 위로였다.
쉬는 날에도 동료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러 카페 Rouge로 출근해서 이미 한잔을 쭈욱 들이킨 채 내내 알아보고 눈여겨본 다른 카페로의 탐방을 떠난다. 대부분의 카페는 오후 4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자칫 늦장을 부리면 한 잔을 사 마시기에도 빠듯한 시간이 된다. 그러니 부지런히 일어나 간신히 샤워만 한 채로 모닝커피를 마시러 나간다. 그리고 하루가 고되다 느껴질 때나 집에 돌아올 때는 시나몬 파우더와 초코파우더가 잔뜩(커피를 다 덮을 만큼 잔뜩!) 뿌려진 카페모카를 마신다. 무얼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한국에서 가져온 에세이와 일기장을 가지고 나가 읽어도 그만 안 읽어도 그만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커피를 마신다. 사람이 많아진다 싶으면 어디에나 있는 나무와 물이 가득한 공원 벤치에 앉아 홀짝홀짝 멍- 때리고 앉아있다 들어가는 길은 마냥 무해했다.
그렇게 뉴질랜드 1년, 호주 여행까지 마치고 돌아오니 가장 아쉽고 그리운 것은 매일 손쉽게 마시던 커피가 되었다. 새로 생겼다던 '감성' 카페들의 커피들은 실망스러웠고 무난한 스타벅스만 들락날락거렸다. 한참을 애타게 뉴질랜드와 호주를 그리워하다 그곳의 카페처럼 아침 7시부터 문을 여는 호주 바리스타 출신의 카페 RM의 오픈 소식을 들었고, 그 이후에는 호주에서의 사진들로 커피 쿠폰을 만들고 늘 사용하던 뉴질랜드 시럽 SHOTT을 사용하는 유메이크미를 만나게 되었다.
사실 하늘에 둥둥 뜬 사람처럼 부유하며 살다 돌아와 굳건히 땅에 발을 딛자니 딱 1년 그곳의 기억이 행복한만큼 아프고 그립기도 해서 뉴질랜드 생활을 생각나게 하는 이 두 카페를 자주 오지는 못한다. 그러다 어디라도 붙잡고 그곳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면, 하루가 고되 카페모카 위에 한가득 올려진 시나몬가루와 초코 가루가 생각이 날 때면 터덜터덜 이곳에 온다. 가만히 앉아 크게 어떤 것도 하지 않고 카운터와 살짝 떨어져 앉아 커피 바 앞에 도란도란 각자가 가진 그곳의 이야기와 추억을 꺼내는 것을 가만 듣는다. 꼭 스팀밀크를 사용해야 하는 따뜻한 커피만 시키거나, 굳이 호주 뉴질랜드의 국민 텀블러 킵컵(Keep Cup)을 들고 가 내밀며 '저도 그곳에 있었어요'라고 혼자 하는 말을 전하며 -
*Place*
✔️ RM Cafe / insta@rm.ncng
: 월~토 오전 7시~오후 7시 /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 전북 익산시 인북로 390 (영등동)
*point! 선명하고 또렷한 라떼아트가 그려진 플랫화이트 or 라떼 그리고 바나나 브래드
✔️ 유메이크미 / insta@umakeme_coffee
: 월~토 오전 10시~오후 9시 / 일요일 오전 10시~오후 7시 (휴무 확인)
: 전북 익산시 동서로 19길 49 한울타리 원룸 1층 (신동)
*point! 뉴질랜드산 프리미엄 과일시럽 ‘SHOTT이 사용된 아이스티, 호주에서 온 ‘프리나 차이 Prana Chai’ 밀크티와 ‘T2’ 차 그리고 한 벽면을 가득 채운 책과 문장들
✔️ 춘포 대장 공장
: 전북 익산시 춘포면 춘포리 116번지(춘포 4길 66-6)
: 뉴질랜드 캠브릿지에 살 때 자주 가던 공원과 닮아있다. 개인 사유지이지만 입장료가 별도로 없고 오후 4-6시 유동적으로 오픈한다. 바람이 부는 곳에 앉아 갈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준비되어 있다. 책과 함께 혹은 아무것도 없이 음료 한잔과 함께 풀 멍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