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는 모든 것이 코코넛이다. 어느 곳에 가든 커다란 코코넛을 통째로 척척 칼로 쳐서 신선한 코코넛 워터를 마실 수 있고, 야채요리에는 잘게 간 코코넛이 함께 씹힌다. 볶음이든 커리든 코코넛향이 빠지지 않고, 코코넛 그릇에 음식이 자주 담겨 나온다. 게다가 가장 유명한 술도 코코넛을 발효시켜셔 만든다. 발리에서 코코넛은 삶의 모든 순간을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난 엄청난 코코넛 애호가다. 코코넛 특유의 향을 좋아한다. 그러니 코코넛으로 둘러싸인 발리는 나에게 천국 그 자체다. 그런 나에게 운명처럼 다가온 체험이 있었다. 바로 코코넛 오일 만들기. 세상에 매번 병에 담겨서 숟가락으로 퍼쓰기만 했던 코코넛 오일을 내가 직접 만들 수 있다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붐붐이라는 듣기만 해도 신나는 이름을 가진 아저씨가 흥을 잔뜩 안고 우리를 데리러 왔다. 왜 우리가 되었냐면, 그 전날 길 가다가 너무나도 흥겨운 노랫소리에 스르륵 들어가 함께 얼쑤 노래 부르며 친해진 2명의 친구가 코코넛 오일을 만들러 간다는 나의 이야기에 ‘나도!’를 외쳤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난 넷의 에너지는 어마어마했는데, 에어컨도 안 나오는 차를 타고 가면서 쉬지 않고 고래고래 웃었다.
붐붐의 집은 정말 아름다웠다. 깊고 넓은 정글이 눈앞에 펼쳐졌고 그 속에 오두막이 여러 채 있었다. 웰컴 드링크를 마시는 동안에 여기에 묵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자랑하기 시작했다. 붐붐의 팬클럽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였고, 여기로 호텔을 옮기고 싶어지기까지 했다.
웰컴티를 마시던 공간에서부터 오늘하루 끝내줄거라는 예감이 왔다!
코코넛 오일 만들기는 붐붐의 어머니, 누나와 함께 했다. 해사한 미소를 띤 두 분은 우리가 신나서 까르르 웃을 때마다 함께 박수를 치며 웃었다. 참 웃음이 많은 가족이구나 생각했다. 딱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체험장소는 알고 보니 붐붐이 태어날 때부터 살았던 집의 일부였다!
붐붐이 어릴 때 코코넛을 들고 놀았다는 오두막에서 진행되는 코코넛 오일 만들기! 자연 속의 소담한 곳이었다.
코코넛 오일은 나무에서 코코넛을 따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래되어서 저절로 땅에 떨어진 코코넛을 이용해서 만든다고 한다. ‘Coconut Egg’라고 불리는 작은 씨앗이 코코넛 워터를 머금고 자라면서 열매 안을 가득 채우면 그것이 씨앗이 되어 새로운 나무가 되는데, 그 직전의 코코넛으로 만든 오일이 최상급이라고 했다.
거칠한 껍질의 코코넛을 갈랐더니 봉실한 코코넛 에그가!
엄청나게 크고 무서운 칼로 코코넛을 턱턱 쳐서 껍질을 벗기고 갈랐더니, 코코넛 에그가 탁! 먹어보니 사각사각한데 솜사탕 같은 식감과 맛이었다. 코코넛 과육을 발라내어 강판에 갈고, 끓인 코코넛 워터를 부어 조물조물했더니 코코넛 밀크가 딱! 신선한 코코넛 밀크는 부드러움과 향긋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바나나잎으로 만든 그릇에 담아 마시는 따끈한 코코넛 밀크의 맛이란! 평생 처음 먹어보는 맛에 저절로 물개박수가 튀어나왔다.
열심히 코코넛을 갈아서 순도 100프로의 코코넛 밀크 만들기!
이 코코넛 워터를 끓이면 물 - 크림 - 오일로 저절로 분리된다. 우리의 미션은 떠오른 오일을 국자로 살살 걷어내는 것. 걷어낸 오일을 다시 한번 튀김소리가 날 때까지 끓이면 코코넛 오일은 완성된다! 국자로 걷어내면서 달려온 코코넛 크림은 오일 안에서 튀겨져서 엄청난 풍미의 밥반찬이 된다. 이걸 곧바로 떠먹어봤는데 그 감동이란! 이제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칠맛이었다.
코코넛 크림 튀김은 진짜 감칠맛의 끝이었다!
적고 보니 간단하지만, 결코 간단하지 않았던 과정들이 즐거웠던 이유는 매 순간 사려 깊게 보살펴주고 함께 웃어주는 붐붐과 그의 가족들 덕분이었다. 중간중간 대기 시간에는 배가 터질 정도로 간식을 주었는데, 특히 잘게 간 코코넛을 얇게 부친 과자에다가 바나나를 싸서 먹는 ‘코코넛 바나나 타코’가 정말 별미였다. 부담스럽지 않은 단맛이 몸에 스며드는 맛!
코코넛 바나나 타코를 먹으라며 내어주고서는 불 앞을 지키시던 붐붐의 어머니. 정말 고우셨다.
음식과 함께 나눈 붐붐의 이야기는 큰 울림을 주었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은 모두 ‘+’의 관계라고 했다. 나를 가운데에 둔다고 하면, 위에서는 신(god)이 끌어주고 아래에는 자연(mother earth) 그리고 양 옆으로는 함께하는 사람들(people)이 끌어주어 내가 균형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 제단에 제물을 올리며 신과 자연에 감사하고, 그 마음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똑같이 나눈다고 한다. 그게 행복과 웃음 그리고 균형의 근원이라고. 이 마음을 ‘타뚜아마시’라고 한다고 알려줬다.
오늘 하루종일 붐붐이 우리에게 건네준 마음은 ‘타뚜아마시’ 그 자체였다. 가슴이 짜르르 울렸다. 내가 놓치고 있던 감사의 한 조각이 맞추어진 것 같았다. 이 마음이구나. 그래서 티 없이 맑은 친절이 가능했던 것이구나. 코코넛 오일을 만들러 왔다가 중요한 마음의 조각을 찾은 것 같았다.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때의 향긋함과 웃음이 저절로 느껴진다.
발리까지 가서 코코넛 오일을 만들러 간다고 했을 때 다들 의아했었다. 어쩌면 이 의아한 선택을 했었던 것은 운명이 아니었을까. 돌아오는 차 안에서 행복에 겨워 깔깔 웃으며 나는 생각했다. ‘내 마음속에 분명 있지만, 가끔 잊어버리는 삶의 중요한 조각을 찾기 위해 이렇게 멀리 떠나와 새로운 세상을 헤매나 보다’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