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에서 만난 술 (Beer, Wine, Arak)

발리에는 빈땅(Bintang)만 있는게 아니더라구요

by 은조미

술을 즐겨마시는 나에게 다른 나라의 술은 흥미로운 미지의 세계다. 때때로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맛의 조합은 나를 찬란한 기쁨으로 인도한다. 대부분의 여행과 국가에 대한 기억은 특별한 술과 연결되어 있어서 그 나라의 술을 직접 만나보는 것은 나에게는 특별한 의미이다.


발리에서 내 입맛에 맞는 술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꼭 내가 만났던 발리의 술들에 대한 기록을 남겨놓자고 다짐했었다. 생각보다 발리에서 만날 수 있는 술에 대해서는 빈땅 외에는 정보가 다양하지 않았기에 나는 그냥 마셔보고 느껴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나 이 글이 발리를 방문하는 누군가에게 선택의 시간을 30초라도 줄여준다면 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내가 메뉴 앞에서, 마트와 편의점에서 수없이 고민하며 보냈던 시간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물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있고, 술 취향이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가 써내려가는 술 이야기는 모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먼저 술 취향을 고백하자면, 나는 맥주 중에서 쌉쌀한 IPA를 가장 좋아하고 에일 종류는 모두 다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필스너와 라거는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땀이 쏟아지는 더운 날, 간절하게 청량한 알콜이 땡길 때 빼고는 필스너나 라거를 내 돈을 주고 마시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실 필스너와 라거가 점령한 발리의 대중적인 맥주와는 잘 맞지 않았다.


와인은 탄닌이 강한 레드와인을 가장 선호하고, 모스카토와 같은 단 맛이 나는 와인은 정말 별로라고 생각한다. 같은 맥락에서 시럽을 가득 넣은 달달한 칵테일은 안 좋아하고, 토닉 워터 베이스까지는 약간 참지만 그 이상은 선호하지 않는다. 생강과 시트러스 계열을 좋아하는 편이어서 대체로 그 종류 안에서 논다. 입에 텁텁한 단맛이 나는 것을 싫어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발리는 마트에서 사든, 편의점에서 사든, 식당에서 마시든 술 가격이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최대 1000원). 부담되는 수준이 아니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에 맞게 술을 즐기면 된다.


맥주(Beer)

발리에서 만난 최고의 맥주는 Canggu Black Sand Brewery의 IPA라고 자신있게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종류라서가 아니라 IPA 치고도 정말 좋은 홉의 향과 에일의 쌉싸름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밸런스가 잘 맞는 맥주였다. 나는 연달아 4잔을 연속으로 마시기도 했는데, 특유의 맛은 알딸딸한 기운을 뚫고 맹렬하게 느껴졌다. 발리의 큰 마트에서도 캔으로 만날 수 있고 캔에 그려진 바롱이 귀엽다. Canggu에 간다면 반드시 찾아가서 먹어 볼 만한 시그니처 맥주다.

맥주는 영상으로만 찍어둬서 아쉽지만 브루어리 전경 소개!


호기심에 편의점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맥주(달달한 맥주 제외)를 마셔보기도 했다. 결국에 얻은 것은 나는 라거나 필스너는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고, 더운 날씨에 퍼지는 청량함 외에는 딱히 매력을 모르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나마 그 중에서 내 입에 가장 맛있었던 것은 SINGARAJA였고, 이 맥주는 인도네시아 맥주가 아니라 발리 맥주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발리사람들은 자부심을 느끼는 것 같았다.

BALIHAI : 청량하지만 왠지 홉의 맛이 아쉽다.

SINGARAJA : 홉의 맛과 탄산의 톡톡 튀는 맛의 조화가 좋았다.

PROST PILSENER : 맑은데 뭔가 아쉽다. 첫 모금부터 빈 맛이 난다.

PROST LAGER : 맑지도 않아서 더 아쉽다. 홉의 느낌이 거의 없다.

BINTANG : 어딜 가든 찾아볼 수 있지만 딱히 찾지 않게 된다. 그냥 사이드 디쉬 같은 느낌의 맥주.


쉽게 구하기는 힘들지만 나를 만족시킨 맥주들 (Ale 러버들에게 바칩니다.)

KURA KURA - Island Ale (draft, ABV 4.9%, IBU 26) : 발리 수제 맥주! 쌉쌀함이 강하지는 않은데 과일향이 강해서 빈땅보다는 살짝 무거운 맥주를 선호한다면 맛있게 마실 수 있는 맥주였다.

ISLAND BREWING - Summer Pale Ale (draft) : Fresh is best라는 말이 딱 떨어질 정도로 정말 신선한 맥주! 해변을 바라보며 즐기는 느긋함이 그대로 느껴지는 맥주다.

Tumage Beer - Pale Ale (bottle) : 발리 북부의 물과 천연 재료들을 사용해서 만든다는 맥주. 마지막 날에 우연히 찾아서 1병만 사온 것이 너무나도 아쉬울 정도의 맥주였다. 홉도 몰트도 정말 풍성해서 한 모금 마시자마자 감탄했다.

Diablo Session IPA (Can) : 홉과 몰트의 맛이 향긋하다. 편의점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 가격도 다른 에일 맥주에 비해서는 저렴했다.


와인 (Wine)


일단 와인을 좋아하고, 오는 길에 면세점에서 술을 구입하지 않았다면 → 발리 공항에서 나올 때 면세점이 하나 더 있는데, 발리에서 가장 싼 술을 만날 수 있다. 나는 그 곳에서 호주 19Crimes의 소비뇽 블랑을 데려왔다.

이 와인이 없었다면 비가 쏟아지는 첫 날 많이 고달팠을거야.

호주의 영향을 많이 받은 발리는 자체 와이너리가 있을 정도로 와인에는 꽤나 진심이다. 맛을 견주자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발리에서 생산한 와인을 마셔본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 다른 술과 마찬가지로 와인, 특히 수입한 와인은 많이 비싼데 발리에서 생산한 와인은 비교적 저렴하다.


와인들은 대부분 시내나 마트의 리큐어 샵에서 따로 구입할 수 있다. 편의점에서 파는 경우도 있는데 대부분 먼지가 앉을 정도로 보관이 잘 되어 있지 않아서 추천하지는 않는다.

Two Island, Shiraz : 호주 바로사벨리의 포도를 발리로 가져와서 만들었다는 쉬라 와인. 탄닌이 강한 편은 아니고 묵직함 또한 약하다.

Sababay, White Velvet : 발리에서 만든 와인 중 vivino 평점이 그나마 가장 높았다. 쇼비뇽 블랑의 향이 스치지만 맛은 조금 다르다.

Hatten, Red Aga : 발리는 와인도 맥주처럼 가볍게 만든다. 큰 기대보다는 그냥 맥주 마시기 싫을 때 가볍게 맥주처럼 마실 수 있는 와인.

Hatten, Rose : 팩으로도 파는 와인. 전혀 무겁지 않고 향긋하다기보다는 상쾌하다.

Maschio, Pinot Grigio -Veneto, IT : 만약 짱구 라브리사에 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상큼한 스파클링 와인을 마시고 싶다면 추천. 그냥 맛있는 스파클링 와인을 원한다면 비추천.

이런 풍경에 스파클링 와인은 참을 수 없잖아요?

칵테일 (Cocktail)

Ubud의 ‘Casa Luna’라는 곳에 가면 직접 만든 Ginger Ale 로 만든 Moscow Mule이 있다. 알싸한 생강 맛과 달지 않은 베이스, 혀에 확 꽂히는 보드카의 맛. 거기에 발리 민트 특유의 향의 조화가 정말 좋았다. 이런 종류의 맛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박수를 치며 좋아할 맛이다.

Ubud의 ’Cupid BBQ’에 가면 Tom Island라는 칵테일이 있다. 보드카, 럼, 진, 데킬라를 모두 베이스로 섞어서 토닉워터에 탄 것인데 깔끔하고 상쾌하다. 이 곳은 폭립이나 로스트 치킨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그 조합이 정말 좋다. 개인적으로는 맥주보다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아락 (Arak)

발리는 ‘Arak’ 이라는 리큐어가 굉장히 유명한데, 이것을 베이스로 활용한 칵테일들이 꽤 맛있으면서도 동시에 저렴하다. 약 40~45% 정도이고 위스키와는 다른 신선한 향이 매력적이다. 공장에서 만들어서 병에 담아서 파는 아락들도 있지만, 로컬 사람들과 조금만 친해지면 시중에 파는 아락이 아니라 각자의 집에서 양조하는 홈메이드 아락을 마실 수 있다. 대부분 500ml 생수병에 가득 담아 팔고 훨씬 저렴하게 마실 수 있다. 집집마다 막걸리 레시피가 있던 우리나라의 가양주 문화처럼 발리에도 집집마다 아락 레시피가 있다는 게 신기했고 이렇게 로컬 사람들을 통해서 접하는 아락은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이런게 정말 맛있다.

주로 코코넛으로 만들고 때로는 여러가지 과일을 섞어서 발효시키기 때문에 샷으로 마셔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고 가벼우면서도 상쾌한 맛이 느껴진다. 가끔 식당을 다니다가보면 Arak Cocktail 이 있는데 리큐어를 Arak으로 쓰기 때문에 발리에서만 마실 수 있는 칵테일을 만날 수 있다. 이런 곳들은 대부분 집에서 직접 만든 Arak을 사용하기 때문에 샷을 주문하면 색다른 Arak을 마셔볼 수 있는 것도 하나의 Tip이다.


적어놓고 보니 정말 많은 종류의 술을 마시며 다녔다. 이 글을 쓰면서 사진을 살펴보는데, 이 술을 즐겼던 순간들이 새록새록 떠올라서 참 많이 행복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술 자체도 좋아하지만, 술과 함께 즐기면서 기억하게 되는 모든 순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다. 이 모든 술들을 경험하면서도 활력을 잃지 않게 도움을 준 나의 간에게 깊은 감사를 보내며 마무리하는 나의 발리 음주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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