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의 개념과 정의가 바뀐다. 자신의 전문성으로 살아가는 시대
직장에서 퇴근 후 다른 직장으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용 여건이 불안해지고 가계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부업을 하는 경우인데요. 통계 데이터나 설문조사 결과를 찾아보지 않더라도 ‘투잡'이나 ‘N잡'에 대한 언급량은 많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지 않은 20대에서 N잡러에 대한 언급량이 높은데요. 그만큼 고용의 질이 좋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N잡러'란 2개 이상의 복수를 뜻하는 'N'과 직업을 뜻하는 잡(job)', 그리고 사람을 뜻하는 '~(er)가 합쳐진 신조어입니다.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말합니다. 정규직으로 직장을 다니는 사람들도 있고, 여러 곳에 고용되는 사람들도 있고, 직장인이면서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에서 영향력을 쌓은 후 인터넷 쇼핑몰을 병행하는 사람도 있고, 브런치에서 콘텐츠를 생산하여 책으로 출간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거에 투잡으로 불렸던 부업의 개념은 하나의 직업 형태인 N잡러로 불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N잡러에서 의미 있게 지켜볼 것은 자신의 꿈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군가는 공무원이 되기 위해 노량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있고, 누군가는 대기업에 입사하기 위해 지원서를 제출하고 있지만, 평생직장에 대한 환상을 벗어던지고 자신의 길을 가려는 사람들입니다. N잡러는 직장인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찾으려는 사람들이기도 합니다.
'일'의 개념과 정의가 바뀌고 있습니다. 20대를 만나면 "들어갈 직장이 없다" 하고, 30대를 만나면 "이 길이 나의 길이 아니다"라고 합니다. 40대를 만나면 "직장 다닐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하고, 50대 이상은 "아직 더 일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모두 다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정작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더 재미있게 할 수 있고, 더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음에도 '일'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은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N잡러는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을 꿈꿉니다.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대규모 고용은 발생하지 않는 상황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다면 일석이조 일것입니다. 결국 ‘일'은 단순한 밥벌이의 수단이 아니라 나를 성장시켜주는 자아실현의 수단입니다.이를 위해 일속에서 자신을 브랜딩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일 것입니다.
자신을 브랜드화하기 위해 당장 회사를 떠날 필요는 없습니다. ‘상품 기획은 김 과장이 잘하지', ‘온라인 콘텐츠는 박 대리가 잘 만들지'와 같이 회사 내에서 전문 역량을 키우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을 브런치나 블로그에 정리해서 공유하고, 유튜브 영상으로도 만들 수 있습니다. 직장 개념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마케팅 전문가’ ‘온라인 광고 전문가' ‘IT 전문가'처럼 직업인으로서 나를 바라보면 직장은 충분한 가치가 있습니다. 나의 이름으로 산다는 것, 퍼스널 브랜드를 가진다는 것은 시간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모든 사람들이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단순 업무보다 창조성을 중요시하는 사회로 접어들고, 조직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일할 수 있는 환경들이 조성되면서 N잡러는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KBS, MBC가 아니어도 유튜브로 자신만의 방송을 할 수 있고, 출판사가 아니어도 e-book를 만들어서 크몽에서 판매할 수 있습니다. 오프라인 매장이 없어도 그림 그리기에 대한 영상을 만들어서 클래스101 등에 키트와 함께 판매할 수도 있습니다. 페이스북, 블로그,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의 가벼운 연대를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네트워크도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N잡러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려면 궁극적으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일정한 소속 없이 자유계약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리랜서와 유사하나, 단순 하청이 아닌 스스로의 이름으로 시장을 창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차이점이 있습니다. 수익성이 낮은 일을 대신해주는 ‘아웃소싱’이라기보다는, 동등한 입장에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파트너’가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외형적 규모보다 내실 있는 비즈니스도 고민해야 합니다. 전통적 관점에서 기업을 평가하던 기준은 직원 수, 매출액, 자본, 부동산 등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가 기준들은 N잡러에게 큰 의미가 없습니다. 규모가 크다는 것은 그만큼 무겁다는 것이고, 이것은 소비자들의 요구사항을 신속하게 반영하기 어렵다는 이야기 이기도 합니다. 직원이 많고, 매출액이 높고, 사무실이 크다고 해서 더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규모를 키우고 넓은 사무실 등을 얻으면 남들에게 좀 더 그럴싸하게 보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해야 하고, 그만큼 신경 써야 하는 일도 많아지게 됩니다. 사람들은 규모의 경제를 이야기 하지만, 그 속에 숨어 있는 규모의 비경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사업규모가 일반기업에 비해 작을 뿐이지 지향하는 목표까지 작지는 않습니다. 사업규모를 키우고 안 키우고는 개인의 선택이며, 실력이 모자라서 N잡러로 살아가는 것도 아닙니다. N잡러는 양적인 삶보다 질적인 삶을 추구합니다. 매출액, 직원 수, 사무실 크기 등 외형적인 것보다는 자유, 부, 명성, 행복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것들을 얻기 위해 사업규모를 크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역으로 말하면 사업규모가 크지 않아야 얻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경험하고 있는 것처럼 화폐 가치가 만들어내는 경제 환경 이외에도 '관심'이라는 비화폐 자산이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스마트기기를 활용해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만들어 내고, 이렇게 만든 콘텐츠를 SNS를 활용하여 유통하게 되면 콘텐츠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 링크되기도 하고, SNS에서 공유되기도 합니다. 콘텐츠에 만족한 사람은 검색 등을 통해 홈페이지나 SNS에 추가로 방문을 하게 되고, 이를 통해 N잡러는 자신의 이름과 서비스를 자연스럽게 알릴 수 있게 됩니다. 초기에는 그 효과가 미약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다양한 사람과 연결되면서 효과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누군가 만든 콘텐츠를 이용하면서 '관심'을 지불하고, N잡러는 그 '관심'을 바탕으로 전문가로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N잡러는 ‘부캐’ 문화와 맞닿아 있습니다. 개그맨 '유재석'이 트로트 가수 '유산슬'로, 음반 프로듀서 '유야호'로 때와 장소에 따라 자신의 개성을 바꿔가면서 활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부캐 문화입니다. 이러한 부캐 열풍은 평범한 직장인 사이에서도 번져가고 있습니다. 퇴근 후에 유튜브에서 새로운 이름으로 활동을 하거나, 취미활동으로 시작한 상품을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 등에 판매하는 것입니다.
본업 이외에 부업으로 소득을 창출하는 N잡 열풍은 전 세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직장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소득 창출 기회를 늘리려는 2030 세대가 대표적이지만, 가계 부담을 덜기 위해 직장 소득 이외의 수입원을 고려하는 4050 세대도 N잡러에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물론 모두가 N잡러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일부 기업의 경우 '영리 활동 겸업·겸직 금지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N잡러를 생각하고 있다면 부업과 겸업에 뛰어들기에 앞서 본업 직장의 근로계약서 등 사규를 꼼꼼히 살펴봐야 합니다.
한 우물을 파는 것은 옛말입니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고 세계적인 고용 불안으로 평생의 직장, 평생의 직업의 개념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코로나 19로 인해 그간 안정적이라 여겨졌던 직업조차 위기를 맞으면서 자발적, 비자발적으로 N잡러를 택한 사람들이 많은 것도 현실입니다. N잡러는 새로운 직업을 찾기 위해 자신의 가능성을 테스트해 볼 수 있는 시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다양한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거나 현실에 쫓겨 포기했던 꿈을 새로이 실현하는 장이 될 수 있습니다. 앞으로의 세상은 하나의 직업으로 나를 설명하는 것이 아닌, 개인이 브랜드이자 플랫폼이 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