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불안하지 않냐고 묻는 그녀에게
곧 퇴사 예정자인 동생을 만났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취업을 해서
첫 퇴사다. 3년 전, 4년 전에도 이직에 대한 고민을 했었지만 그 과정을 넘고 약 9년이란 시간을 한 회사에 있었다. 그래서 그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울지 너무 잘 알 것 같다.
대기업 공채로 들어가 평생직장으로 정년퇴직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내 또래만 해도 평생직장의 개념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 흔치는 않다. 내가 스타트업이나 엔터에 있어서 그런 사람들만 만나서 그런지는 모르겠다. 오히려 안정을 불안으로 느끼는 주변인이 많다.
처음은 항상 두렵다. 첫 연애와 첫 입사와 퇴사, 첫 출산 등등 비교대상이 없어 이 세계가 마지막인 것 같은 느낌, 막연한 두려움이 있다. 첫 회사를 그만두는 일이 가장 어렵고 회사에 온 마음을 쏟는 경우도 흔하다. 첫사랑에게도 그다음 사람이 없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한다.
지나고 보니 두 번째 회사와 두 번째 사랑은 반드시 왔다. 비교대상이 생기면 그때야 깨닫는다. 처음이라는 것에 내가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고 살았는지, 그 의미가 나를 힘들게 했는지......
첫 회사의 긴장감으로 힘을 잔뜩 주고 다니는 후배들에게 ‘첫 회사는 그만두기 위해 다니는 회사니 너무 많은 의미를 담지 마라’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지금은 그저 성장하는 과정 중일뿐이니 이것이 인생의 종착지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번아웃이 심하게 온 그녀는 최근 회사 내부의 변화가 크게 생겨 과다한 업무에 각종 질환이 생길 만큼 갈리고 있어 이직을 하는 것이 아닌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고 했다. 밥을 먹으며 이 얘기 저 얘기하다. 그녀가 물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고정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급여에 불안함을 느끼지 않냐?'라고 물었다.
나는 1초 만에 대답했다.
처음엔 나도 그 걱정을 안 했다면 거짓말인데, 일 년이 지나 보니 그것이 만약 생존을 위한 먹고사는 문제라면 나는 오히려 먹고사는 것에 대한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겠구나!라는 생각을 해, 오히려 더 큰 고민은 아직 이 많은 남은 인생을 무엇을 하며 살아가지?라는 고민을 해! 끊임없이...
진짜 뭘 하든 생존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사실 지금이 최저의 수입이고 나날이 올라가는 금리에 대출 이자가 너무 많이 나가 있는 돈 없는 돈 싹싹 긁어 아주 큰돈을 은행에 상환했다.
(이제 8,000만 원 남았다ㅠ 언제 끝나?!)
아직도 미스터리다. 난 분명 적자 인생을 살고 있었는데 회사 다닐 때 연봉으로 갚지 못했던 것을 가장 가난한 지금 어떻게 갚을 수 있었는지..... 그땐 갚을 의지가 별로 없었던 건가?!
회사를 다닐 때 내가 4~500만 원을 벌어도 사실 모으기보다 오히려 거기에 맞춰 소모적인 삶을 살았다.
불 필요한 모임, 불 필요한 소비 그냥 소모되기 위해 버는 삶을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오히려 한 달에 그 절반을 벌어도 사는 건 비슷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소모적인 삶의 에너지를 줄었고 소비에 군더더기가 많이 제거된 느낌이다. 내가 소유한 많은 것들이 짐짝처럼 느껴지기도 해 물건을 오히려 버리려고 했다.
많은 부분에서 군더더기가 빠진 느낌이다.
(몸의 군더더기도 좀 빠졌으면 좋겠다;;)
나는 다행히 명품을 사거나 사치에는 원래부터 관심이 없었다. 지금의 나는 10만 원, 20만 원씩 모으기보다. 시간을 투자하되 내 삶에 도움이 되는 것을 주로 소비를 하는 패턴으로 많이 바뀌었다.
회사를 다닐 때보다 나의 독서량은 10배쯤은 늘었다.
(바쁘다 바쁜 현대사회를 외치며... 책을 멀리했었다)
책을 사는 데는 돈을 아끼지 않는다. 밀리의 서재를 보고, 없는 책은 종이 책으로 사되 대신 포인트를 알뜰하게 모으고 각종 플랫폼을 잘 이용하여 할인을 야무지게 받아서 저렴하게 구매한다. 지나간 책들은 무조건 알라딘에서 구매한다.
1:1 필라테스를 잠시 쉬고 발레나 요가 등 내 몸과 정신을 단련할 수 있는 것에는 기꺼이 대체 소비를 하는 것? 이렇게 줄이는 소비가 목표는 아니지만 나중에 진짜 돈이 필요한 곳에 쓰고 싶었다. (그것이 대출금을 갚고 싶은 건 아니었다;;)
나는 지금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을 내 시간을 투자해 학비로 삼아 스킬업 하는 일이 재밌다고 했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집에 돌아와 언니와 한 시간 동안 통화를 하며 우리는 정말 행복의 스위치가 잘 켜지는 사람이라며 서로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오늘 내가 입 밖으로 이런 얘기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 보니 정신승리인지 아직은 생계로는 덜 급한가 보다.
사실 그 기저에는 내가 지금 시기에 회사를 나오고자 했던 이유에도 지금은 오롯이 내 몸 하나만 건사하면 되고 엄마, 아빠도 아직 건강하시고 언니가 또 부모님을 잘 케어해주고 있고, 언니처럼 아들 셋 있는 가정도 없어 지금이 이기적으로 나만 생각할 수 있는 온전한 자유가 있는 시기다.
지금 이 자유의 순간을 첫사랑에게 썼던 마음처럼, 첫 회사를 다녔던 마음처럼 오롯이 다 써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