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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건의 이유, 선물의 의미

by 위드리밍


몇 년 전부터 매일 글을 쓰며 내 삶의 비우기를 시작했다.

시간도, 물건도, 인간관계도 점점 많이 비우고 거리를 뒀다.

그렇게 찾아온 빈 공간 덕에 나를 더 잘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비우기를 시작하며

물건에 대한 회의감이 많이 들었었다.

물건이 다 무슨 소용이야. 어차피 감가상각되는데, 사람이 찐이면 되지.라는

근자감이 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것들로 치부하기도 했다.


그러다 최근 물건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계기가 있다.


어느 날 문득 내가 사용하고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이

모두 애정 어린 분들이 선물이거나 혹은 그들과 관련된 제품들이란 발견을 할 수 있었다.


명상을 오래 하던 블로그 이웃 덕에, 일상에 명상이 스며들었고

요가를 오래 하는 친구 덕에 나도 요기니가 되었다. 덕분에 인생 첫 요가복을 선물 받았다.

오래 가계부를 쓰는 친구 덕에 가계부를 선물 받고 작년부터 벌써 1년째 가계부를 써오고 있다.

예쁜 디자인의 여행용 가방과 파우치는 우리 가족 여행 필수품이 되었고

책갈피도 매일 읽는 책들 사이에 고이 꼽혀 있다.

드립커피를 좋아하는 친구덕에 여행에 가서도 드립을 내려먹게 되었고

지인이 준 레고로 아이는 매일 레고 놀이를,

친구들이 나눠준 육아용품 덕에 매일의 육아가 한결 더 수월해졌다.


얼마전 엄마가 보내준 과일택배들을 열자마자 막둥이가 순식간에 다 먹어 해치웠다. 엄마가 가족에게서 받은 사랑이 엄마인 나를 거쳐 우리 아이들에게까지 가는 구나.

내리 사랑이란 걸 느끼게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물건, 소지품, 그것들에 결국 나의 삶이 다 담기는구나.

내가 자주 사용하는 물건, 가지고 있는 물품들이 곧 나를 대변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연결과 선물들 덕에 지금의 내가 나의 정체성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물건에는 때론 진심이 담긴다.

마음이 담기기도 한다.


우리가 고맙거나 감사한,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이고 쉬운 수월한 방식이었다.


그간 물건, 선물이 뭐가 중요해

담긴 마음이 중요하지.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글쎄, 과연 그럴까?

나 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세상엔 그리 많지 않다.

세상의 언어는 모른 채, 그저 나답게, 나 다운 방식으로 살아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강력하게 선물하고 싶었던 순간들을 떠올랐다.



그냥, 좋으니까 감사하니까

돕고 싶으니까

좋은데 딱히 이유가 있나라는 마음으로

돌려받지 않을 마음으로 순수하게 전하는 경우가 많았다.


과거의 나에게 선물은 내 마음이 힘든 날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퇴근길, 정말 마음이 힘들 때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작은 선물들을 샀다.

때론 부모님, 때론 조카, 때론 친한 친구들

눈에 보이는 그들이 좋아할 만한 작은 선물을 샀다가 문득 전해주었었다.

내겐 책이 일상이라 내게 가장 수월하고 편한 방식으로 책을 선물하곤 했는데

오히려 상대에겐 어렵고 부담스러운 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점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개인적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생일날에는 늘 함께하는 혹은 오랜 지인들과 연락이 닿는다.

오랜만에 생일로 지인들과 소통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 순간들에 감사하며.

매 생일마다 올해 감사한 분들께 책 선물을 해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 전부터 생일날, 올해의 감사한 분들께 마음을 전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문득 읽어보고 좋은 책이 나와서 선물하고픈 생각에 지인 몇몇 분께 책을 선물했다.

올해 생일에도 이 프로젝트를 이어갈 수 있었다.


결국 선물이란

상대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

평소에 그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그의 관심사를 바라보고

배려하는 것들에서 감동이 오는 것이었다.


과연 나는 이웃에게 조금 더 배려하는 삶을 살고 있을까?


최근 다녀온 작가님의 강연에서는 가장 고가의 팬이라고 말씀 주셨다. 어찌 보면 슈퍼팬이었다.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비용.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그만큼 삶의 많은 영향을 받았으니까.


돌아보니 시간이 흘러도 마음이 남는 게 물건이었다.

돈은 교환가치인 화폐라서 잘 머물지 않는다.

그런데 물건은 그에게 오래 머무른다. 그래서 오래 묵혀뒀다가 나중에 빛을 발휘하는 게 오히려 물건이었다.


그동안 내가 선물했던 혹은 내가 선물 받았던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내가 선물했던 그들에게

나는 누군가에게 오래 기억되고 싶었던 걸까?


평소엔 진심을 잘 전할 수 없으니까.

말하기 어려운 진심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절한 언어가 바로 선물. 물건인 것이었다.


좀 더 감사한 마음들에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좋은 마음은 좋다고, 감사하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 문화에서 자랐다면 좋았을 텐데

동방예의지국 대한민국은 좋은 감정도, 감사한 일들도 감정표현 자체를 억압받았다.


작고 사소한 감정들에 감사를 표하는 연습들을

매일 블로그 글을 쓰면서 한다.

블로그는 매일 나를 더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말로는 하기 어려운 말들을 글로는 진심을 담아 표현하기도 하니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언어와 감정표현, 선물을 더 많이 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한때 부족하고 오만했던 나의 마음을 기록하며.

생일 때마다 잊지 않고 축하해 주는 지인들, 친구들, 이웃들 늘 감사하다.



"내게 없는 것을 줄 수 없다. - 웨인 다이어의 인생 수업"



세상에 내가 받은 사랑과 사랑의 방식들을 더 많이 나누고 베풀라고 내게 사랑을 전해주었나 보다. 덕분에 다양한 사랑 표현의 방식을 알아간다. 우리 아이들도 그들처럼 사랑을 나누는 어른으로 자랄 수 있기를. 함께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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