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여름이었다.
그날도 엄마가 일하는 식당 앞 거리에서 놀고 있었다.
어떤 아저씨가 내 이름을 물으며 다정히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엄마랑 내게 인사를 건네던 그 아저씨의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엄마는 늘 내가 뭐를 사달라고 하면 잘 사주지 않았던 기억이 많은데 그날도 차를 타고 가던 중 길가에 과일 가게가 보여서 엄마에게 포도가 먹고 싶다고 말했고 엄마는 다음에 사준다고 했다.
실망한 마음으로 한참을 가는데 아저씨가 차를 세우고 포도를 사 왔다.
나는 그 순간 엄청 기분이 좋았고 그 아저씨가 정말 마 음에 들었다. 아저씨가 좋았던 기억은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어느 낡은 시골 기와집이었다.
가운데 마당이 있었는데 물을 퍼 올리는 우물 펌프가 있는 집이었다.
마루에 무섭게 생긴 할머니 그리고 기저귀를 차고 있는 제법 큰 여자 아이가 있었다.
그게 내가 기억하는 그날의 기억들이다.
그렇게 일곱 살의 나는 그날 새아빠와 네 살 여동생이 생겼다. 엄마와 아저씨가 할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어디론가 나가고 없을 때 할머니가 갑자기 그 마중물 나오는 우물 가에 똥 묻은 기저귀를 던지며
“앞으로 네 동생이니깐 네가 빨아라! ”
호통치던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울면서 쪼그리고 앉아 기저귀를 조물조물했고
엄마와 아저씨가 돌아왔을 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왠지 그렇게 됐다.
할머니가 무서웠던 걸까 7살 나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엄마에게 그 일들을 숨기고 있었을까?
지금도 그 기억을 하면 그 작은 아이가 너무도 가엽고 불쌍하다.
그렇게 그곳에서 며칠을 보내고 우리는 방 한 칸 부엌 하나 달린 어느 시골집으로 이사를 했다.
흙으로 지어진 그 집은 그냥 현관이라고 할 것 없이 판 자로 만들어진 문틀에 창호지가 붙여진 문이 그 집의 현관이 되고 방문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은 작은 처마가 우리의 신발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정도였고 방에서 부엌을 가려면 방문을 열고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가야 부엌에 갈 수 있다. 또 내가 기억하는 부엌은 쥐와 귀뚜라미랑 항상 함께했다.
늘 쥐가 갉아먹은 비누로 세수하고 빨래했으며 설거지 한 식기들은 겨우 플라스틱 뚜껑 덮인 식기 건조대가 쥐로부터 오염을 지켜주는 전부였다.
그 작고 뻥 뚫린 부엌이 있는 셋방에서 우리는 새로운
가족이 되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새아빠가 처음 아프기 시작한 때부터 19살 새아빠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그 집에 혼자 남아 살게 되었다. 낡은 흙집은 벽지가 다 뜯어져 그 속에서 마른 흙들이 떨어졌고 겨울엔 연탄보일러도 고장이 났다.
그렇게 창호지 문 달랑하나 둔 춥고 추운 방에서 전기장판에 추위를 이겨가며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매일 밤 자는 동안 지붕이 내려앉아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될까 늘 불안과 공포로 몇 년을 더 혼자 그 집에 서 살았다.
그렇게 새 가족이 된 우리 가족은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새아빠와 엄마는 나와 4살짜리 그 여자아이를 두고 아 침에 나가서 저녁에 돌아왔다.
나는 돌봄 받아야 할 나이에 나보다 어린 동생이 생겼 다.
새아빠를 만나기 전 나는 늘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엄 마와 함께 했었는데 이제 엄마는 아침에 나가 밤에 돌 아왔고 더 이상 엄마 품에 안겨 잘 수가 없었다.
그 여동생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대소변을 못 가리고 중학생이 되어서도 같이 자는 이불에 오줌을 쌌다.
내가 19살이 될 때까지 세탁기를 써본 적이 없었으니 그때마다 얼마나 힘들고 짜증이 났었는지 생각하면 어 찌 살았나 싶다. 특히나 사춘기 여학생에겐 씻을 곳도 마땅치 않은 곳에서 정말 힘들었던 하루하루였다.
엄마가 힘들게 일하고 집에 왔는데 할 일이 쌓여 있을 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까 또 동생한테 화를 내고 나도 같이 혼날 테고 그게 싫었던 나는 엄마에게 조금이라도 사랑받고 싶어 날마다 수돗가에 쪼그려 앉아 빨래도 하고 설거지도 해놓고 엄마를 기다렸다.
나는 그렇게 19살까지 세탁기 없이 아주 원 없이 손빨래를하고 살았다. 겨울에는 바가지에 따뜻하게 물을 데워 받아놓고 손을 녹이며 빨래를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일들이 내가 겪은 일이 맞나 싶다.
그래서 지금 나는 작은 행주나 걸레 속옷하나조차 절대로 손빨래를 하지 않는다.
엄마와 새아빠는 작은 1톤짜리 트럭 그때는 용달트럭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 트럭을 가지고 파지와 고물을 줍고 다니는 일을 했다.
일이 고돼서 그랬을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엄마와 새아빠는 술을 마셨고 싸우는 일도 많았다.
나는 늘 눈치를 봐야 했고 여동생을 챙겨야 했다.
다정했던 엄마는 늘 술에 취해 화가 나 있었고 새아빠의 꾸지람도 나를 힘들게 했다.
새아빠는 늘 나에게 네 동생이니까 네가 챙기라고 하는 말과 내가 학교에서 만점 맞은 통지표를 들고 와도 칭 찬이 아니라 너만 잘하지 말고 네 동생은 한글도 모른 다고 잘 가르치라는 꾸지람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