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했던 초등학교 시절을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나는 많이 달라졌다. 정확히 초등학교 6학년 옆자리 짝꿍을 만나면서부터 180도 변했다.
내 짝이 된 그 아이는 나와는 다른 활달한 성격에 친구 도 많았고 공부도 잘했다.
쓰러져 가는 흙 집에 살던 나와는 다르게 동네 몇 안 되는 양옥집에서 살던 부자 집 딸이었다.
공부도 잘하는 데다 성격도 밝고 당찬 그 아이가 나는 좋았다. 그 앤 전교 학생회장 선거를 준비했는데 내게도 선거운 동 도움을 청했다.
그 기회로 나는 난생처음으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경험을 하게 됐다. 찌질했던 내가 잘난 친구와 함께 있으니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용기도 났고 재미있었다. 늘 주눅 들어 살던 내가 그 친구랑 있으면 나도 뭔가 대 단히 신분 상승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이 되었고 점점 더 많은 친구들 앞에 나오면서 자신감이 배로 상승했다. 성격도 조금씩 변했고 여중생답게 외모에 신경이 쓰이 기 시작했다.
애들이 놀리고 괴롭히면 말도 못 하고 울기만 했던 내 가 아니라 누구든 나를 무시하지 못하게 쎄 보이고 싶
었다.
이성 친구에게 호감도 생겼다.
그렇게 나는 사춘기가 오고 있었다.
초등학생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서문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나는 몇몇의 남, 여 친구들과 함께 그중 한 명의 남학생 집에 놀러 갔다.
한참 다 같이 어울려 놀다가 집주인 남자아이가 자신의 엄마가 만들어 놓은 동동주 항아리가 있는 곳으로 우리를 데려갔다.
자기는 먹어봤는데 맛이 좋다며 우리에게도 먹어볼 기
횔 주고 싶다 했다. 커다란 항아리가 여러 개 있었고 조금씩 떠 마시고 물을 부어 놓으면 엄마가 모를 거라고 했다. 우리는 친구의 말에 망설임 없이 함께 동동주를 나누어 마셨다.
그날 나는 처음 술을 먹어 봤다.
'어른들은 왜 이런 쓰디쓴 술을 마실까?'
하는 생각도 잠시. 친구들과 몇 잔을 연거푸 마셨더니 곧이어 실실 웃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친구들 얼굴만 마주 봐도 웃음이 터져 나오고 데굴데굴 구르며 기분이 좋아졌다.
기분이 하늘을 나는 것처럼 붕 뜨고 묘 했다.
실컷 떠들고 웃고 마시며 놀다가 그 친구는 담배를 피 운다며 집 밖으로 나간다고 했다.
우리에게 담배가 피워보고 싶으면 집 뒷마당으로 따라오라고 했다.
나는 그 당시 네 식구 사는 단칸방에서 아빠가 담배를
피우는 게 정말 싫었다.
좁은 방 안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와 냄새가 너무 괴 로웠다. 나는 절대로 담배 피우는 남자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 각도 했었다.
그래서 담배 피우러 따라오라는 친구의 말에 망설이고 있었는데 같이 놀러 간 친구들은 너도 나도 친구를 따 라 집 밖 뒷마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에 휩쓸려 알 딸딸하고 몽롱한 정신으로 결국 나도 따라갔고, 그날 처음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에 라이터로 불을 붙이고 입으로 쭉 빨아서 바로 연기를 뱉어 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친구는 담배를 한 개비씩 우리에게 나눠주고 담배 피우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입에 문 담배를 쭉 빨아들이면 연기가 입 속에 모이는 데 모아진 연기를 숨을 들이마시며 가슴깊이 끌고 갔다가 다시 입을 통해서 내뱉는 방법이었다.
그냥 입에 모인 연기를 내뱉는 걸 겉 담배 연기를 가슴 깊이들 이마시고 뱉는 걸 속 담배라 했다.
그걸로 담배를 제대로 피우는 건지 아닌지 구분하면 된다고 가르쳐 줬다.
배운 대로 연기를 가슴깊이 들이마셨더니 목이랑 가슴 이 쓰라리듯이 아팠고 머리가 어질 거리고 기침이 멈추지 않고 미친 듯이 나왔다.
멈추지 않는 기침을 하며 캑캑대며 괴로워할 때 친구는 처음엔 다 그런 거라고 하다 보면 좋아질 꺼라 그랬다.
그날 나는 처음 술맛을 보았고 담배도 피워봤다.
그 뒤로 나는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술과 담배의 굴레에서 오래도록 있었다.
그것들을 끊어 내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 당시에는 미성년자도 슈퍼에서 술, 담배를 살 수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헤어진 후 몽롱한 기분으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가는 길, 엄마 아빠 심부름으로 술 담배를 사가 던 동네 작은 슈퍼에 들렀다.
나는 아빠 심부름인 양 담배 한 갑을 사 들고 집으로 왔 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따로 떨어진 재래식 화장실에 문을 잠그고 들어갔다. 환풍기도 없이 그냥 창구멍 하나 뚫려있는 악취가 나는 그곳.
코를 막고 숨을 참아가며 볼일을 보던 화장실.
그곳에서 나는 아까 친구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기를 반복하며 지독한 냄새와 함께 담배 한 갑을 다 피우고 나왔다.
담배 피우는 법을 익혀서 나도 친구들 앞에 나와 멋지 게 피워 보고 싶었다.
친구에게 배웠던 그 속 담배를 피우면 내가 더 쎄 보일 거 같았다.
밑이 뻥 뚫린 똥이 가득 차 올라온 좁은 재래식 화장실에서 냄새 때문에 숨도 쉬기 어려운 그곳에서 담배 한 갑을 다 피워 내다니 나도 참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그때 담배를 다 피우며 했던 생각이 지금도 나는데 내 가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 아무 때나 내가 끊고 싶으 면 끊으면 된다고 내 의지를 높게 평가했지만, 그날 이후 나는 20년 넘게 금연은 내 의지대로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렇게 담배 피우는 법을 익히고 자랑스럽게 등교했고 친구들에게 자랑했다.
나는 담배를 제대로 피우는 몇 안 되는 학생이었다.
점점 문제아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기 시작했다.
친구 따라 발을 담갔던 시작이 어느 순간 아이들 무리에서 주동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방과 후 동네 뒷산이나 폐가 같은 곳에서 아니면 부모 가 없는 친구 집에 모여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웠다.
학교 생활은 점점 엉망이 되어 갔다.
한 번은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걸려서 교장실로 끌려간 적이 있었다.
그날 엄마를 학교에 불러오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학교에서 부모를 불러오라고 할 때 나는 엄마에게 두들겨 맞게 될까 조심스레 울면서 말했다.
우리 집에는 속이 꽉 찬 늘씬한 나무 막대기가 있었는 데 엄마가 새아빠랑 재혼 후 나는 엄마에게 그 막대기로 맞는 일이 많아졌다.
동생이 똥오줌을 못 가려서 옷을 버려 놀 때, 엄마가 지 칠 때, 아빠랑 싸웠을 때나 아빠한테 내가 혼이라도 날 라 치면 늘 엄마는 먼저 나를 혼내곤 했다.
엄마는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대로 때렸다.
파리채, 먼지떨이 개, 효자손, 머리빗 얼마나 힘을 다해 때렸는지 맞을 때마다 엄마 손에 들린 도구들은 툭하면 부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가구 공장에 직접 찾아가 속이 꽉 찬 나무 막대기를 손잡이까지 만들어 곱게 뽑아왔다. 늘씬하게 잘빠진 그 막대기는 내가 더 이상 맞기 싫어 엄마 몰래 내다 버리기 전까지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튼튼한 매 타작 도구였다.
엄마는 늘 무서웠고 나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당장이라도 머리채가 잡힌 진 않을까 걱정하며 학교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걸렸고 엄마를 학교에서 부른다고 말했다.
엄마는 생각보다 덤덤히 내 이야기를 들었고, 놀람을 뒤로한 채 나에게 괜찮다.
다음부터 안 하면 된다.
울지 마라. 말하며 나를 다독여 줬다.
엄마의 다른 모습도 있는걸 그날 알게 됐다.
그리고 그다음 날 엄마는 담담히 학교에 오셨다.
속으로 얼마나 놀라셨을까 맘 고생 했을 엄마를 생각하면 지금도 제일미안했던 순간이다.
그런데 학교에 불려 다니기 시작한 엄마가 나는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학교에 올 때마다 허리를 푹 숙인 채 고개도 들지 못하고 선생 님들께 죄송하다 싹싹 비는 엄마 모습이 정말 초라하게 보였다.
내가 잘못한 건 생각도 못했고 매번 낮은 자세로 선생 님들에게 굽실대는 엄마 모습이 싫었다.
내가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덜 미움받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도 모르고 그저 굽신거린다고만 생각한 철없는 나였다.
나는 학교를 시작으로 엄마를 여러 곳에서 불러야 했다. 지하철역 화장실에서 담배 피우다 지하상가 화장실에 서 싸우다가 공원에서 교복을 입은 채 담배 피우다 파 출소에 잡혀갔다. 그 외에도 여러 사건사고 현장에 엄마를 불러야 했다. 그때마다 엄마는 나를 데리러 왔고 나 대신 잘못을 빌었다.
그러던 중 새아빠가 아파서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다
엄마가 새아빠 병간호에 매진할 때 나는 더 자유롭게 비행을 했다. 한편으로는 나를 두고 새아빠만 돌보는데 열심인 엄마에게 사랑을 구하듯 더 통제 안 되는 생활을 했다. 그렇게 중학교를 졸업한 나는 살던 곳에서 한 시간 걸 리는 시내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게 됐다.
작은 시골마을 중학교에서 나를 포함한 전교생 102명 은 마지막 졸업생이었다. 102명만 남아있던 작은 학교와는 비교가 안 되는 커다 란 고등학교는 신세계였다.
아무리 학생이 많았어도 이미 까질 대로 까진 내 모습 이 여기에서도 티가 났을 터.
선생님들에게 찍히고 주목받는 건 시간문제였고 각 학 교에서 논다 하는 아이들과 모여 끼리끼리 어울리는 것도 금방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이 끝날 때 학생 전체 통틀어 출결이 제 일 안 좋은 걸로 1등을 찍었다.
그만큼 학교도 안 나갔고 학교에 가도 늘 가방만 두고 학교 밖에 나가 놀았다.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여러 분야 특히 술, 담배, 학교 폭력, 이성 친구 문제엔 빠지지 않고 내가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별명이 미친개였던 담임은 학기 초 반 전체 아이들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 했는지 교실 앞으로 나를 불러 세웠다. 새 학년 첫날 교실 앞으로 불려 나간 나는 출석부로 머 리와 얼굴을 마구 맞았다.
자기가 담임이 된 순간 사고를 치면 가만 안 둘 꺼라는 엄포를 들으며 반 대표로 뒤지게 맞았다.
나는 그런 미친개랑 학교 생활을 할 수 없다 생각했고 자퇴서에 사인을 했다.
우린 다른 방향으로 미친 개였다.
그는 나를 튕겨 나가 게 하기에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