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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Dec 17. 2024

18살 다방아가씨가 되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별다른 할 일이 없어서 중2 때부터 해오던 주유소 일을 오후시간 알바에서 풀타임 근무로 바꿨다. 그 당시 시급이 1800원 정도였으니 하루 12시간을 일 해도 지금의 최저 시급의 2시간 조금 넘는 정도의 벌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둔 또 다른 친구가 다방에 서 일하고 있었는데 월급을 많이 준다며 내게도 같이 일 하자는 제안을 했다. 나는 그렇게까지 망가지지 말자고 말했지만 (남자를 상 대로 하는 험한 일이라 여겨 인생이 바닥으로 내려가는 길 같았다.)

주유소 하루 12시간 알바와는 비교가 안 되는 월급에 마음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친구는 다방에서 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나를 설득했다. 그냥 가게에 손님이 오면 옆에 앉아 차를 같이 마시며 말동무만 해주면 되고 배달을 부르면 차를 싸 갖고 배 달 지로 가면 된다고 했다. 배달 간 곳에서 가끔 무례한 손님을 만나면 그냥 돌아오면 된다고 했다. 그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할 만하다 생각이 됐다.


주유소 일은 늘 기름때에 찌들어서 더운 여름에도 추운 겨울에도 오롯이 밖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더위와

추위에 싸워야 했고 어린 여학생이 하기엔 고된 일이었다. 추운 겨울 자동 세차기에서 연신 쉬지 않고 나오는 차들의 물기를 걸레로 닦는 일은 정말 힘들었던 일 중 하나다. 한 번은 계산한 영수증을 전달하고 손이 차 문에 끼었 는데 고객이 모르고 차를 출발했다.


새끼손가락이 차 문에 끼인 채로 앞으로 조금 나갔다.

그 일 때문에 손톱이 빠진 적도 있다.

그만큼 여학생이 하기에 고되고 힘들었던 주유소 일은 하루 종일 일해도 다방 월급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주유소에서 시급 1800원을 받아서 하루 12시간씩 근무를 해도 한 달에 70만 원 정도를 벌었는데 다방 한 달 월급은 그보다 두 배도 더 많은 200만 원 가까이 받았었다. 그게 내 마음을 바꾸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돈.


학교도 그만둔 나는 돈을 빨리 벌고 싶었다.

지독한 가난에서 빨리 탈출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친구의 권유에 못 이기는 척 다방에서 일해 보기로 했다. 지금은 다방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지만 그땐 시내에 다 방이 많았다.


나는 친구가 일하는 다방에서 같이 일하기로 마음을 먹

고 친구를 따라 그곳으로 출근을 했다. 하는 일은 생각보다 단조로웠다. 주로 남자 손님이 오면 차를 주문받고 그 옆에 앉아서 차 한 잔 같이 마시며 말동무를 했다.

(매상을 올리기 위해서는 한자리에서 서너 잔의 차를 같이 마셔야 했다.)


사실 옆에 앉아 있으면 남자들은 다리도 주무르고 싶기도 손을 잡고 싶기도 했을 텐데 누가 봐도 어려 보였던 나에겐 다행히 쉽게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그리고 배달 전화가 오면 커피와 보온병을 싸 들고 배 달을 다녀오는 일이었다.


키가 작고 짧은 다리 때문에 혼자서 스쿠터를 탈 수 없었던 나는 아가씨를 태우고 배달 장소를 오고 가는 일 을 해주는 삼촌이랑 같이 다녔다. 그러다 한 번은 그곳을 그만두고 인천의 연안부두라는 곳에까지 가서 일을 하게 된 적도 있었다.


항구에 있는 남자들은 육지의 남자들과 달랐다.

나를 다루는 손길부터 조심성이 없고 거칠었다.

그때는 사장 언니의 집에서 숙식을 하며 일을 했다.

시내랑 다르게 항구에 있는 남자들은 거칠었다.


커피 한잔 시키고 잠깐 농담하는 수준을 넘어 그 시간 어떻게든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딴짓을 하고 싶어 했다. 돈으로도 유혹했지만 나는 돈보다 무서움이 컸다.

남자들을 그때 새롭게 보게 됐는데 겉모습은 멀쩡해 보여도 이런데 서는 다 똑같은 놈들이구나 하는 혐오스러움을 느꼈다.


그때마다 나를 거칠게 대하고 싶어 하는 손님들에겐

"다른 아가씨 보내 드릴게요"

말하면서 무서웠지만 퉁명스럽게 쏘아붙이고 그 순간을 도망치듯 빠져나온 적도 많았다.

내가 그렇게 남자들을 상대로 웃음을 팔며 돈을 벌게 된 첫 번째 직업은 다방 아가씨였다.


그들이 부르는 곳은 참 다양했다.

한 번은 25톤 트럭에서 커피를 주문한 적이 있었다.

짧은 치마에 힐을 신고 다녔던 나는 배달을 마치고 차에서 내려올 때 발을 헛디뎌 바닥으로 떨어졌다.

다리를 다친 나는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었다.


한동안 걷기 힘든 지경이 되었고 당연히 일은 할 수 없었다. 그 일로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어쩔 수 없이 다방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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