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쯤이었다.
금요일은 영준이가 매주 한 번씩 기숙사에서 집으로 오는 날이다.
금요일 저녁 일을 마치고 퇴근하는 길 남편에게 전화가왔다.
-영준이가 귀 뚫고 싶다고 해서 허락해 줬어.
내가 그러라고 한 거니까 오늘 영준이 집에 오면 뭐라
고 하지 말라고 전화했어
-뭐? 고등학생이 귀를 뚫어? 미친 거 아냐?
당신은 그걸 허락해 줬다고? 쫌만 있으면 맘대로 다
하고 다닐 일만 남았는데 무슨 학생이 귀를 뚫어!
-우리 땐 안 그랬냐? 너 사춘기 때 생각해 봐~
네가 할 소린 아니지. 아무튼 내가 허락한 거니까 귀
뚫고 집에 와도 뭐라고 하지 마.
나는 내가 살아온 날들에 비해 보수적이다.
아마도 그건 내가 그런 삶을 살아봤기 때문에 아이들은건전하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하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그래서 내 기준과 내 가치관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고
어긋나면 불안해하고 화를 내고 혼을 냈던 거 같다.
그러나 그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든 틀과 기준에 맞춰 키우는 동물이나 로봇 같다는 생각이 최근에야 깨달아졌다.
나는 크리스천이다.
예수님을 믿게 된 지 10년 정도 되었다.
가난한 살림에 재혼가정의 온전하지 못한 울타리 안에서 제대로 된 돌봄과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결핍으로
삐딱하고 엇나간 사춘기를 보냈다. 성인이 된 20-30대 까지도 끝없이 방황하며 인생의 밑바닥을 살아가던 나는 예수를 만나 사랑을 구했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인정해 주길 바랬다.
그런 나는, 내가 너를 책임지고 너의 엄마가 되어 주겠다고 약속한 아들에게 사랑과 안전한 울타리가 아닌
마치 인격 없는 동물처럼 대했던 나를 발견했다.
그동안 나는 아이를 사랑해 주면되지 머리로만 생각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인격적으로만 대했어도 이렇게까지 우리의 관계가 망가지진 않았겠다 싶었다.
마침 아이가 귀를 뚫겠다는 이야기를 듣기 전에 이
생각을 해서 다행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뭐라고 한마디하긴 했지만 아이가 귀를 뚫고 온 것에 대해서 잔소리할 생각은 없었다.
가끔 친정 엄마랑 길을 가다 지나가는 여중생들의 옷차림을 보며 혀끝을 찰 때면 엄마는 늘 말했다.
-너는 더 심했어 이년아 기억 안 나?
맨날 똥꼬 보일만큼 치마 잘라 입고 다니던가 아니면 치마가 맨날 찢어져서 꿰매 입고 가방에 교복치마 두 개씩은 갖고 다녔잖아. 누가 누굴 보고 쯧쯧 거리냐 네가 지금 보니 저건 아니다 싶지?
그랬던 나를 기억해 보니 영준이의 모습이 지극히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기 시작했다.
집에 도착하자 양쪽 귀에 피어싱을 하고 어슬렁 거리며내게 인사라고 마지못해 고개를 까딱 하며 지나가는 아이에게 나는 말했다.
- 야! 양아치냐? 한쪽도 아니고 양쪽에 피어싱을 하게?
안 아파? 귀걸이 보다 두꺼워서 아플 텐데..
후시딘 잘 발라라 덧나지 않게.
분명 자신의 모습을 보면 욕부터 퍼붓고도 남을 내가
아프지 않냐 약 잘 발라라 하고 말하는 내 모습에 아이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이 반갑게 삐딱한 자세를 바로잡고 말을 이어간다.
- 아파요. 덧나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해요?
애들이 하길래 저도 하고 싶어서 했어요~
- 아니 그니까 양아치냐고~ 양쪽에 피어싱은 뭐야~
그 말에 우리는 정말 오랜만에 눈을 맞추고
피식 웃고 말았다.
늘 차갑고 서늘한 공기만 맴돌던 우리 사이에
아주 작은 온기가 퍼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는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 순간을 말이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서로를 향해 다시 한번 마음을 열어가기 시작했다.
한술 더 뜬 나는 이 기분을 몰아 아들에게 피어싱 선물을 해줘 볼까? 검색을 해보았다.
어랏? 피어싱 이쁜 건 많이 비싸구나!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호기롭던 마음을 접어놓고
내년 생일선물로 찜해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