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다.
고등학교 진학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시간이
왔다. 나는 진작부터 고등학교는 기숙사 학교로 보내야지 마음먹고 있었다.
맘먹은데로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내 바람은 그랬다.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내 마음에 미움도 같이 커져 한집에 있는 시간이 나로선 몹시도 괴롭고 지쳐갔다.
나만 그랬던 건 아니었을 터.
우연이라고 핑계처럼 말하고 싶지만
나는 대놓고 아이가 씻는 틈을타 몰래 핸드폰을 뒤져봤다. 아이는 친구와 문자 메시지 대화 속에 나를 지칭하는 단어 “그 사람”을 언급하며
“그 사람하고 동생이 빨리 죽어 없어 졌으면 좋겠어”
라고 시작하는 나와 자신의 동생 욕을 친구에게 실컷 하고 있는 내용을 봤다.
물론 처음도 아니었고 몰래 뒤져봐야 좋은 내용 없는 거 뻔히 알면서 나는 왜 그토록 아이의 핸드폰을 뒤졌을까?
뭔가 집요하게 미운 이유를 찾고 싶었던 거겠지.
뭐 이제 이런 대화 내용에도 충격받지 않을 만큼 머리를 수차례 얻어맞은 지 오래….
그냥 아이를 더 미워할 건수 하나 찾아낸 거에 불과했다.
-그래 그렇지 ~ 너도 나만큼이나 나와 함께 있는 게
고통스럽구나~!!! 나만 그런 게 아냐 나만 나쁜 사람이 아닌 거야 그래 맞아.
나는 남편에게 지난번에도 아이가 친구에게 내 흉을 본얘기등 여러 가지 같이 살면 안 될 이유를 꺼내 들며
아들을 기숙사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핏대를 세워 그렇게 몇 번이고 지겹게 말해도 동의할 수없다는 남편이 답답해 미칠 지경에 이르렀다.
남편은 어린 아들에게 이혼하면서 준 상처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남편이 아들과 나 사이 문제에선 내 마음을 이해해 주지 않는 거 같아 서운했다.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야겠다 마음먹고 남편과
내 대화 사이에 아이를 불러냈다.
마지못해 인상을 찌푸리며 어슬렁 거실로 나와 삐딱하게 서있는 아이에게 말했다.
“ 너 아빠 앞에서 솔직히 말해 너도 나랑 영재랑 같이 살기 싫잖아 우리 꼴도 보기 싫은 거 아냐?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며? “
아이는 일그러진 얼굴과 날 선 눈빛으로 나를 힐끗 거리며 주먹을 쥐어 잡고 입을 꾹 닫는다.
또 자신의 핸드폰을 함부로 만진 것에 대해 화가 단단히 난 얼굴이다.
나는 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 왜 말 안 해?! 네 아빠가 나만 이상하게 생각하잖아?
나도 너랑 같이 있으면 숨 막혀~!! 너도 마찬가지잖아? 내가 네 엄마였니? 너 무조건 기숙사 있는 학교로
가고 당신도 허락하지 않을 거면 나랑 이혼해! 나는
더 이상 이렇게 못살아!! “
언제나 그렇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미쳐 날뛰고 악을 지르며 말하고 있었다.
소리를 지르다 거실 소파에 초3 둘째 아들이 티브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엄마 나빠!!! 엄마는 맨날 소리만 질러~ 형아만 미워해 엄마가 이집에서 나가 엄마 미워!”
애 듣는데서 뭐 하는 건가 생각할 정신은 없었다. 그저
내 배 아파서 낳은 내 새끼마저 나를 비난하는 게 서운하고 그 서운함 마저 화살은 큰아이에게 돌아갔다.
이 모든 게 영준이 저놈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저놈만 없으면 남편과 싸울 이유도 없고 내가 힘들게 낳은 내 아들이 나에게 밉다고 화를 낼일도 없었을 거다.
그 일이 있고 얼마뒤 영준이 담임선생님께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전화가 왔다.
담임은 영준이가 가고 싶어 하는 학교가 있는데 지금 성적으로는 조금 어렵다고 했다.
그러나 영준이가 그 학교에 꼭 가고 싶어 하고 아직
2학기가 남아있으니 좀 더 지켜보자 했다.
영준이 본인도 기숙사 학교를 가고 싶다고 담임과 상담을 했던 모양이다. 내가 뭐라고 해서 그런 건지 본인도 답답해서 인지 아무튼 나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에게 말했다.
“담임선생님이 그러시는데 너 ㅇㅇ고등학교 가려면 성적이 조금 부족하다며 부지런히 공부해서 꼭 그 학교 가라~ 그게 너도 살고 나도 사는 거야!! “
“네”
역시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서로를 외면하고 인격을 무시한 채 쏘아대는 내 말에 아이는 마지못해 존댓말로 짧게 대답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우리의 대화는 여느 평범한 엄마와 아들의 대화가 아니었다.
-네가 너무 싫어 그러니 제발 좀 내 눈앞에서 사라져 줘
라고 아이의 상처 따윈 상관없이 말했다.
늘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사람의 목소리는 그날 아이의 마음에 얼마나 많은 생채기를 냈을까….
어린 시절 새아빠가 내게 그랬던 거처럼…
아저씨만 없었더라면… 수없이 되뇌던 내가 떠올랐다. 나도 똑같이 아들에게 잊히지 않을 또 하나의 상처를 심어준 날이다.
아들은 기어코 부지런히 공부해서 올해 3월 ㅇㅇ 고등학교에 입학했고 기숙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올 12월.
곧 겨울방학을 앞두고 기숙사 퇴소를 준비하고 있다.
한 달 전 우린
“영준아 기숙사 힘들지 않아? 힘들면 집으로 들어와~”
“힘들어요 집으로 들어갈까요? ”
“네가 힘들면 집에서 다녀~ 엄마는 이제 괜찮아~”
“네 겨울방학하면서 퇴소 신청 할게요”
올여름까지도 서로 마주치기만 하면 으르렁댔던 사이에서 많은 변화를 볼 수 있는 대화를 했다.
언제부터 틀어진 지 기억도 안 날 만큼 오래된 우리의 관계에도 드디어 변화가 찾아왔다.
수없이 풀어보려 애써봐도 풀리지 않던 엉킨 실뭉텅이가 하나씩 풀리려고 하나보다.
그 흔한 어느 집 엄마와 아들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