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아들이 돌이 갓 지나고 나서 이혼을 했다.
남편의 말을 빌려 써보면 전처는 아이가 돌이 되기
전부터 어린이집과 친정에 맡겨두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다녔다고 한다. 엄마와 애착형성이 정말
중요할 시기에 아이는 여러 사람의 손에 거쳐 성장하고 있었다.
그러다 돌이 막 지나고 엄마와 완전히 분리가 되어
이혼 후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친엄마를 만난 적이 없이 자랐다.
그때부터 아이의 주 양육자는 친할머니였다.
친할머니와 아빠, 아이는 나를 만나기 전까지 셋이
함께 한집에 살았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지속적으로
-엄마는 나쁜 사람이야 너랑 아빠를 버리고 갔어
엄마 찾지 말고 할머니랑 살자
라고 매일같이 이야기했다고 한다. 아이에게 엄마가 버리고 갔다고 했으니 아이는 두 번째 버림받는 상처가 댔을 터.
그리고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에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마중 나오는데 자기만 할머니가 마중을 나오니 아이가 점점 커갈수록 엄마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나를 만나고 내가 엄마가 되기로 했을 때
아이는 동네 친구들한테 자랑을 하고 다녔다고 했다.
(그 당시 동네 엄마들한테 들었다.)
-이쁜이모가 이제 내 엄마가 된데요
아이는 신이 나서 늘 친구나 친구엄마들에게 엄마가
생긴다고 자랑을 했다고 한다.
한편 나는 결혼을 앞두고 남편과 많은 이야기를 했다.
주로 내가 남편의 역할에 대해 주문을 많이 했던 거 같다. 아이와 나 사이 중간 역할에 대해서 시어머니와 나사이 갈등문제에서 남편의 역할등 단단히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우리는 매주 아이와 함께 데이트를 하며 정을 붙였고 가정을 이루었다.
이쁜 이모에서 엄마는 달랐다.
그동안 엄마 없는 빈자리가 안쓰러워 아이 위주로 할머니와 아빠가 오냐오냐 양육했던 터라 가뜩이나 에너지가 넘치고 영민하고 짓궂은 아이는 제멋대로 굴기 일쑤였다.
이모였을 때에도 잘못된 걸 가르치려 노력했으나 최대한 좋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혼을 많이
내진 않았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고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점차 아이의 잘못된 버릇은 혼을 내서라도 고쳐주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에게 주양육자가 갑자기 바뀌고 일 년 동안 아무리 함께 시간을 같이 보냈어도 아이에겐 적응해야 하는 환경도 힘들었을 텐데 그때의 어리고 상처 많고 초보 엄마였던 나는 아이를 너그럽게 품을 만큼 마음의 그릇이 크지 않았다.
그저 육아라고는 엄마한테 배운 게 전부였고 잘못하면 소리 지르고 욕하고 때리고 벌 받고 그런 방식,
그 방식 그대로 아이를 훈육하고 있었다.
아이는 친절하고 다정한 이모가 갑자기 무섭게 변한 거 같아 당황했을 거 같다.
지금에서야 그 어린 마음이 조금은 안쓰럽게 느껴지지만 그땐 몰랐다.
그리고 아이는 영민했다.
무섭게 변한 거 같은 나를 골탕 먹이고 싶었나 보다.
어느 주말 시댁에 갔을 때다.
-할머니 이모는 맨날 책도 안 읽어 주고 놀아주지도 않아 밥도 맛없는 것만 주고 간식도 잘 안 줘
어머? 이 녀석 뭐야? 고작 5살짜리가 이런 말을 어떻게 하지? 할머니가 더 윗사람이라 그렇게 말하면 내가
혼날 거라 생각한 거야?
-영준아 왜 그렇게 말해? 아빠가 맨날 봤는데
엄마가 책 읽어 주고 밥도 맛있게 해 주잖아~
거짓말하면 못써~
남편이 아이에게 말했다.
그러자 시어머니께서
-엄마가 책 안 읽어 주니? 안 읽어 주니까 그렇게 말하겠지 영준이가 그럼 거짓말하겠니?
얘야 며느라기야 영준이 책 좋아한다. 책 좀 많이 읽어주고 잘 먹으니깐 먹을 것도 좀 신경 써줘라
한창 잘 먹고 클 때잖니
-네 잘하고 있어요 걱정 마세요
기분이 언짢았지만 남편이 한번 말했고 그냥 더 이상 말대답 하기 싫어서 짧게 대답했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이가 얄밉기 시작했다.
이 녀석 뭐지? 아니 이 쪼고 만 게 이렇게 머리를 굴려?
오랜만이랄 것도 없이 거리가 가까운 곳에 살기 때문에 매주 만나는 할머니 앞에서 온갖 재롱을 떠는 아이를 바라보며 이따가 뭐라고 가르쳐야 하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집에 갈 시간이 되었다.
현관 앞에서 신발을 신던 아이는 갑자기 또 말을 꺼낸다.
-할머니 이모는 나한테 맨날 신발을 거꾸로 신으라고 가르쳐요 이렇게요
라며 신발을 짝짝이로 놓고 신는 흉내를 낸다.
아니 이 녀석이? 아까는 그냥 넘어갔는데 지금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송영준! 너 왜 아까부터 할머니한테 거짓말해?
엄마가 언제 너한테 신발을 거꾸로 신으라고 했어?
-이모가 맨날 그랬잖아 이렇게 신으라고 맨날 시켰잖아
투닥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할머니가 나선다.
-얘야 네가 그랬나 부지 애가 거짓말 하겠니?
-어머니 그렇게 애만 감싸시면 어떻게요 제가 무슨
신발을 거꾸로 신기겠어요 거꾸로 신으면 똑바로
신으라고 가리키겠죠
-알았다 알았어 그럼 그렇다고 치면 되잖니.
애랑 싸워서 뭐 하니 어른이 돼서
아니 뭘 그렇다고 쳐? 아닌 건 아닌 거라고 분명히 가르쳐야지 너무 기가 막히고 화가 났다.
애는 그렇다 치고 대응하는 시어머니의 태도가 기분이 상했다. 남편이 겨우 말려 멈추고 차에 올라탔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냉랭한 분위기를 파악한 남편은 영준이에게 말한다.
-너 아까 왜 할머니한테 거짓말했어?
엄마가 맨날 책 읽어주잖아 그리고 엄마가 신발을 언제 거꾸로 신으라고 가르쳤어?
-아까는 이모가 책 읽어준 게 기억이 안 났었어
신발도 거꾸로 신으라고 했던 거 같아서 그랬어
-그건 거짓말이야 앞으로 거짓말하면 안 돼 아빠한테 혼날 거야
‘기억이 안 났다고? 와 이 녀석 좀 보게’
앞으로 이 녀석과 앞날이 전쟁이겠군….
그날 이후 나는 생각했다.
이 녀석을 어떻게 눌러놀까? 기를 꺾어놔야 하는데…
지금이라면 나는 그때 어떤 생각을 했을까?
어떻게 대처했을까?
그래도 기를 꺾어 눌러야겠다고는 하지 않았겠지…
그럼 우리의 관계도 이렇게 멀리 돌고 돌아오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