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결혼 후 셋이 함께 살던 시어머니는 본가로 가셨다. 남편과 아이 시어머니가 함께 살던 집에 내가 그대로 들어가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웠다.
시어머니는 영준이를 키우며 같은 단지 어린이집 친구 3명과 교재를 하고 있었다.
영준이 포함 4명의 아이들은 같은 어린이집 친구였고 영준이만 할머니와 함께였고 나머지 엄마들은 비슷한 또래였다.
영준이 친구 엄마들은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 연락을 하고 지낼 만큼 나에겐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나와 동갑내기 친구가 있어서 가까워지기 더 수월했다.
그들은 어머니뻘 되는 영준이 할머니가 불편할 법도한데 아이들이 하원 후 같이 놀 때 영준이와 할머니도 꼭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나중에 들었는데 영준이 할머니는 그때도 그 엄마들에게 며느리 대하듯 잔소리를 자주 했다고 한다.
다들 그런 시어머니가 불편하긴 했어도 영준이를
따돌리거나 하지 않았다.
내가 할머니 대신 영준이 새엄마로 갔을 때도 그 세명의 엄마들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입견 없이 대해 주는 평범한 엄마들이 너무 고마웠다.
내가 살아온 지난 삶을 감추고 어쩌다 결혼도 안 한
처녀가 애 딸린 이혼남한테 시집온 착한 옆집 엄마정도로 포장하고 만남을 유지했다.
어두운 과거 속에서 살던 세상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 너무 편안했다.
그렇지만 성격이 활발하거나 외향적이지 않아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했기에 적당히 거리감을 두고 관계를
유지하며 나만의 거리 두기를 하며 지냈다.
그때는 상처로 가득했던 내 안에 가시들이 스스로 벅차기도 했고 나를 스스럼없이 대하는 엄마들에 비해 나 스스로가 위축되었던 거 같기도 했던 거 같다.
아무튼 그런 고마운 좋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새로운 동네에서 배 아파 낳아본 적 없이 훌쩍 커버린 아들을 양육하는 일은 지난 일 년 동안 공들이고 연습하고
공부했던 거하곤 다르게 어려웠다.
늘 변수가 많았고 현타도 많았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우리 아파트 단지 정문 앞에는 부동산이 있었고
상가 1층에 슈퍼, 그리고 지하에 태권도 학원이 있었다.
아이는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태권도 학원을 다녔다.
보통 4시쯤 하원하고 학원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수업을하고 집으로 왔는데, 태권도 학원 안에는 특이하게 커다란 트램펄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학원생들은 물론이고 아파트 단지 내 아이들은 시간
날 때 가서 이용할 수 있었다.
영준이는 활동성이 많고 에너지가 많은 아이라 내향적이고 에너지가 부족한 나와는 잘 맞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태권도 수업이 끝나도 더 놀고 싶으면 놀다가 들어와도 된다고 했다.
늦어도 저녁 먹기 전 7시 안에만 오면 된다고 했다.
수업 끝나고 두 시간 정도 실컷 더 놀다 오면 에너지도 충분히 쓰고, 씻고 저녁 먹고 쉬었다 잠을 재우면 되겠다 싶었다.
친구들이 있어서 더 놀고 싶으면 놀다가 늦어도 7시.
그 안에 얼마든지 아무 때나 집에 오라고 했다.
내가 사는 동 바로 앞이 상가였기 때문에 아이가 안 와도 집에서 1,2분이면 찾으러 갈 수 있기에 넉넉히 시간을 줬다.
아이들이 그 시간까지 수업도 있고 노는 친구들도 많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6시쯤 아직 안 오는 아이가 재밌게
놀고 있나 보다 생각하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준이 어린이집 친구 엄마 중 한 분에게 전화가 왔다.
-영준 엄마 영준이 보러 7시까지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지? 아니 내가 상가 부동산이랑 친하잖아.
거기 뭐 갖다 주러 가는 길에 영준이가 슈퍼 앞에 혼자서 기웃거리는 거야.
왜 이 시간까지 집에 안 가냐고 물어봤더니 엄마가 7시까지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는 거야.
그래서 엄마가 왜 들어오지 말라고 했냐고 그런 말이 아니겠지. 어서 들어가라고 했는데 안 들어가고 계속
기웃거리고 있더라고.
그리고 부동산에 갔더니 부동산에서 그러더라.
애가 두어 시간째 저러고 기웃거리고 다닌데.
부동산 사장도 영준이 한테 왜 집에 안 가고 여기 있냐 배안고프냐고 했더니 엄마가 7시까지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고 그랬데.
부동산 사장은 자기 잘 모르잖아.
영준이 새엄마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나한테 자기 잘 아냐고 물어보는 거야.
영준이가 부동산에 와서 배고프다고 먹을 것 좀 달라고했데. 왜 애가 집에도 안 가고 밖에서 저러고 다니냐고 이상하다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내가 영준이 새 엄마 그런 사람 아니라고 얘기했어.
근데 자기도 알잖아.
부동산 귀에 들어가면 동네에 소문다 나는 거 벌써
소문났을걸?
-네에? 영준이 지금 그럼 슈퍼 앞에 있어요?
-어 그래.
내가 같이 들어가자 해도 안된데 엄마가 들어오지
말라고 했데.
내가 자길 잘 아는데 자기 그런 사람 아니잖아.
그래서 전화했어 얼른 애 데리고 들어가.
동네 사람들도 영준이 엄마 새엄만 거 다 알고
가뜩이나 부동산 사장이 자기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야. 동네에 못된 계모라고 소문 다 날 거 같아.
-네 언니 전화 줘서 감사해요
전화를 받은 나는 순간 수치스럽고 부끄럽고 화가 치밀었다.
지금 같아서는 아이고 이 녀석이 더 놀고 싶어서 같이 놀 친구 없나 찾느라고 기웃거리면서 안 들어온 거 같은데, 가뜩이나 말을 잘 못 전달해서 어른들이 오해했구나 하고 웃으며 넘겼을 텐데…
그때 나는 내 몸에 가득 꽂힌 가시도 감당 못하고 있을 때. 모든 게 예민하고 거슬리고 온통 신경이 곤두서있을 때였다. 그리고 자꾸만 버릇없이 구는 영준이 이
녀석 버릇을 어떻게 잡아놓지 고민할 때라 밖에서 이러고 다닌다는 애를 이해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저 나를 단단히 망신을 시키는구나 생각뿐
새엄마=계모 같은 뜻인데 왜 계모라고 하면 더 나쁜 뜻으로 들리는지.
아무튼 좁은 동네에 내가 그렇게 소문이 나고 있다고 생각하니 보통 열이 받는 게 아니었다.
일 년 동안 연애 하면서 공들여 온 것들과 결혼후 아이와의 관계를 위해서 노력해 온 모든 것들이 전부 무의미해진 거 같았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에 대해 판단하는 것에 대해 엄청 민감하고 예민했을 때 하필이면 그때 왜영준이와 나는 만났을까...
내가 좀 사람다워졌을 때 만났더라면 그날 영준이는 집에 와서 나한테 그렇게 혼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