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
"남의 자식 키우는 거 보통일 아니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그래?"
"네가 어디가 부족해서 남의 자식을 키우면서 산다고 그래"
결혼을 앞둔 내게 지인들은 모두들 이렇게 말했다.
특히 누구보다 그 사정을 잘 아는 친정 엄마는 나를 말리며 말했다.
"왜 엄마처럼 살려고 해 남의 새끼 키우는 일까지 엄마 따라 하려고 하니 엄마가 부족해서 아무것도 해줄 수 없는데 왜 이런 선택을 하려고 하는 거야 너 절대로 저 아이 못 키워낸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없겠니"
남의 자식 키우는 팔자까지 엄마를 똑 닮은 나는 애 딸린 돌싱과 결혼을 했다.
그 후 일 년도 지나지 않아 후회했다.
-남의 자식은 키우는 게 아니라더니 다 이유가 있었네
-내가 미쳤었지
이 남자랑 결혼하면 부족함 많은 내가 그나마 기죽지 않고 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뭔가 대단한 사랑으로 모든 걸 품고 살아내는 이 시대 흔치 않은 멋진 엄마가 될 줄 알았다.
산전수전 다 겪어본 내가 애하나 못 키우겠나 호기롭게생각했다.
부모의 부재로 상처받은 어린 시절을 겪어봤기에 누구보다 아이를 더 잘 이해해 주고 가슴으로 품어줄 수 있을 거라 자신했다.
그러나 10년이란 시간 동안 나는 이 아이를 무참히
미워하고 짓밟았다.
이제야 가슴으로 낳는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씩알아가게 되었다.
아이에게 그동안 미안하다는 말도 수없이 했다.
내 사과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이에게 화도 났다.
뒤돌아 보니 아이는 너무 어렸다.
내 마음 편하고 싶은 일방적인 사과였다.
아들은 나를 이해하기엔 너무 어렸다.
4살짜리 꼬마가 어느덧 17살이 되었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알 거 같다고 말한다.
그런 아들에게 나는 다시 용기 내어 진심을 담아 미안함을 전했다. 여전히 너의 엄마가 되어 네 곁을 지켜주고 싶다고 말했다.
아들은 짤막하게 대답했다.
"엄마 감사합니다"
그 짧은 인사한마디에 가슴이 메였다.
눈엣 가시처럼 모든 게 불편했던 우리 사이가 조금씩 편안해졌고 진심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지금.
우리의 가정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는 분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길 바라며 저희 가정의 이야기를 꺼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