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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22. 2024

엄마의 박복한 팔자

특히 그녀를 스쳐간 죽음들.

엄마의 팔자는 박복했다.


특히 엄마에겐 죽음이라는 슬픔과 고통

따라다녔다.


엄마는 다섯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막내들의 특권인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는 대신 가난했던 엄마집에서 막내는

그저 먹고살기 힘든 와중에

입하나 더 늘었을 뿐이었다.


배가 고파 먹을 거를  달라하면

오빠들에게 혼이 났고 그런 엄마가 가여웠던 외할머니는 늘 쌀 항아리 같은 곳에 먹을걸 조금씩 감춰두고 어린 막내딸에게 몰래 쥐어주곤 했다.


요새는 보리밥이 따로 파는 식당이 있을 만큼

맛있고 건강한  한 끼 식사지만

그 시절 엄마에게 보리밥은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신물이 나도록 먹었던 냄새도 맡기 싫은 음식이 되었다.


가끔 보리밥 정식을 먹고 싶을 때 엄마 생각이 난다.


그렇게 어린 시절 엄마에겐  바로 위에 언니가 있었는데

먹을 것 때문에 맨날 싸우고 혼나야 했던 다른 오빠들과는 달리 유일하게 엄마를 뻐해 주고 챙겨주는 엄마의 보호자였다.


그런 언니는 엄마가 15살 무렵 돈을 벌어 오겠다고 서울로 갔고 그곳에서의 삶을 짐작할 순 없지만

얼마뒤 우울증과 함께 다시 고향집으로 내려왔다.


엄마에게 유일한 친구이자 언니가 왔다는 반가움과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좋았다고 한다.


그런 언니가 며칠뒤 어린 엄마와 

함께 있던 작은 방 안에서 약을 먹고 고통 속에 몸부림치다가 죽어갔다.

엄마는 그 모습을 고스란히 보게 되는 충격을 겪는다.


그것이 엄마에게 찾아온 첫 번째 죽음의 공포였고

엄마 인생에 줄곳 따라다니던 죽음들의 시작이었다.


그 뒤로 엄마는 갓 스무 살이 되던 해

부모님을 동시에 사고로 잃었다. 

엄마에게 닥친 두 번째 죽음이었다.


어릴 때부터 무시받고 미움받았다고 생각한 오빠들과도 엄마의 자격시심이 오해의 불씨가 되어 남이 되는 선택을 한다.


그런 엄마는 매우 어렸고 외로움을 위로해

보호자가 필요했다.

자신의 고된 삶을 피하고 싶어 서둘러

결혼을 했고 첫 아이를 낳았다.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이는 곧바로 세상을 떠났다.

엄마에게 세 번째 죽음이 찾아온 것이다.

그 뒤로 엄마는 세명의 아이

아들 셋을 더 낳았는데 그때마다 돌도 지나지 못하고 아이들은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연이어 자식들이 세상을 떠난  충격과

아이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도망치듯 첫 번째 남편과 이혼을 한다.


그렇게 혼자 방황하며 살던 엄마에게 

따뜻하게 위로해 주며 힘이 되어준 사람이

다시 찾아왔고 재혼을 하고 나를 낳았다.


엄마가 낳았던 아이들은 모두 아들이었는데

딸인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는 왠지 모르게

이아이는 살지 않을까 기대를 했다.


나는 엄마의 기대에 맞춰 건강하게 자랐다.

그리고 바로 연년생 둘째 아들까지 건강하게 출산한다.

엄마는 아이들이 죽을까 봐 불안했던

공포에서 벗어났고 행복을 꿈꾸었다.


그러나 행복한 꿈도 잠시  아이들 대신 남편을

한순간에 잃어버렸다.

나를 낳아준 아빠는 동생이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일터에서 사고로 즉사한다.


엄마가 왜 그리도 많은 죽음을 겪어야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엄마는 그렇게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을 계속해서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었다.


그 뒤 엄마는  또 한 번 재혼해서 나에게 새아빠를

만들어 줬지만  새아빠 역시 우리와 10년 정도 함께하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게 엄마에게 지금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했던

마지막 죽음의 그림자가 되었고

나는 이제 엄마에게 유일한 보호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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