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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11. 2024

엄마는 늘 내게 화가 나있었다.

나를 버릴까 봐 불안했던 어린 시절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가구 공장에서 기계로 잘 뽑아온 나무 막대기가 있었다.


그 시절 엄마는 화가 나면 손에 잡히는 데로 나를 때렸는데 빗자루, 먼지 떨이개, 머리빗, 파리채 등등 늘 아무거나로 때렸다.

얼마나 힘을 주어 세게도 때렸는지 늘 부러지고 망가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엄마는 어느 날 가구 공장에서 손에 잡기 편하게 손잡이까지 있는 나무 막대기를 만들어 집에 가지고 왔다.


내가 13살 무렵 더 이상 그 막대기로 맞기 싫어서 몰래 갖다 버리기 전까지는 절대로 부러지지도 망가지지도 않았던......  손잡이가 달린 그 나무 막대기.




나는 내성적이고 말수도 없는 조용한 아이였고,

특별히 고집이 세거나 말괄량이도 아니었다.


나는 학교 생활도 곧잘 했다.

엄마가 전과책 한번 사주지 않아도 학교 다녀오면 스스로 숙제도 잘해놨고, 학교에서 통지표와 상장도제법 잘 받아왔다.


동네어른들에게 예의가 바르고 인사성이 좋다고 칭찬도 많이 받았다.


그런 내가 엄마에게 참 많이도 맞았다.




내가 7살 때 나에게 새아빠와 의붓 여동생이 생기기 전까지 엄마에게 혼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행여 혼날일이 있어도 그렇게 속이 꽉 찬 나무로 두들겨 맞을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새아빠와 여동생을 만나 같이 살게 되면서

부모님이 함께 일을 나가시면 집에는 나와 여동생 둘이 남게 되었다.

유치원이란 건 다녀본 적 없이, 그냥 집에서 뒹굴 거리거나 ( 장난감도 딱히 없었다) 동네를 기웃거리며 엄마를 기다렸다.


여동생은 초등학생이 될 때까지도 옷에 똥오줌을 싸곤 했다.

여동생이 똥오줌으로 옷을 버려놓으면 늘 엄마에게 나도 같이 혼났다.

하루종일 기다린 엄마가 집에 와서 화를 내고 우리를 혼내고 때리는 게 늘 싫고 무서웠다.

8살 무렵부터 나는 엄마에게 혼나고 매 맞기 싫어서

작은 손으로 수돗가에 앉아 동생의 옷을 조물조물 빨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엄마에게 매 맞던 이유는 늘 비슷했다.

동생이 사고 칠 때(동네 슈퍼에서 과자 같은 걸 자주 훔쳐왔다), 동생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해서 옷을 버려 놨을 때, 새아빠랑 싸우고 화가 날 때, 아니면 새아빠한테 내가 혼나고 있을 때, 내가 새아빠한테 혼나는 게 싫어서 엄마는 중간에서 나를 더 크게 혼내고 매를 들었다.

그리고 겨울에 연탄불을 꺼트리면 어김없이 연탄집개로 혼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나는 엄마를 참 좋아했는데 엄마는 변한 거 같았다.




엄마랑 단둘이 살던 때,  그러니까 7살 새아빠를 만나기 전까지 엄마와 함께한 시간을 날마다 그리워했다. 엄마가 일하는 식당 앞 골목에서 지루한지 모르고 하루종일 엄마를 기다리던 시간들, 매일밤 엄마품에 안겨 잠을 잘 때, 그 모든 것들이 그리워질 정도로 엄마는 내게 무서운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엄마에게 무섭게 혼이 나고 매를 맞아도

울면서 엄마 옆을 떠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엄마는 늘

"저리 가! 꼴도 보기 싫어! 너는 맞고도 왜 내 옆에 앉아 있어?"

모진 말을 하며 나를 내쳤다.

화가 더 많이 났을 땐,

개 같은 년, 때려죽일 년, 쌍놈의 기집년 온갖 욕을 어린 내게 퍼부었다.


어린 딸을 홀로 키우며 좀 더 행복하게 살아보고자 재혼을 했을 엄마에게 나는 ,

여전히 가난하고 고단한 삶에 지친 엄마의

감정쓰레기통이 되어버렸다.


엄마의 마음을 알리 없이 그저 새아빠랑 의붓여동생이 미웠던 나는 엄마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나를 버려두고 새아빠랑 어디론가 가버릴 거 같았다.


그때마다 나는 늘 무섭고 불안했다.



엄마가

나를 미워할까 봐,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나를 버려두고 떠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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