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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25. 2024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매일밤 잠들기가 무서울 만큼...

새아빠를  만나 인사겸 찾아간 할머니 댁에서

며칠이 지난 후.


우리 넷은 새로운 보금자리로 이사를 갔다.


엄마와 단둘이 살던 곳 보다 더 누추한 집이었다.

도착한 곳은 현관이라고 할 것 없이 나무판자로 만들어진 문에 창호지가 발라져 있는 방문이 있었다.


방문을 열면 바로 방이었다.

작은방에는 장롱 두 짝 서랍장하나 티브이 하나가 전부였고

우습게도 냉장고는 방문밖 바로 위에 달린 처마밑에 비 만 피할 정도로 놓여 있었다.


부엌은 방 옆에 신발을 신고 나가야 있었는데

내가 지금 키가 149 정도인데 어릴 때도 몸을 숙여서 다닐 만큼 작은 문에 창문이라고 할 것 없이 그저 벽에 커다란 환기 구멍이 뻥 뚫려있고 한쪽에 연탄보일러가 붙어 있던 곳이었다.


화장실은 방과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밤에는 화장실까지 가기 멀기도 하고 무서워서

82년생인 내가 주변에서 보기 드물게 요강을 쓰며 살았다.


물을 쓸 수 있는 곳도 밖에 있었다.

마당 비슷한 곳에 우물 펌프가 있었고 거기서 물을 퍼올려 모든 생활을 했다.


그렇게 우리 넷은 새로운 가족이 되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거 같은 흙으로 지어진 그 집에서 새 삶을 시작한다.


엄마랑 단둘이 살 때에는 엄마를 하루종일 기다렸어도 엄마가 보이는 곳에서 있었기에 불안하지 않았지만

새아빠를 만나고 나서는 엄마아빠가 같이 일하러 나갔다가 밤에 돌아왔다.


처음으로 엄마와 낯선 곳에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은 내게 참 힘든 시간이었다.

게다가 돌봐야 하는 동생까지 생긴 나는 이 상황이 전부 적응하기 힘들었다.


조금이라도 엄마가 늦어지면 나는 온갖 불안한 생각으로 울면서 기도했다.


엄마가 다치지 않고 빨리 돌아오게 해달라고...

나를 버리고 떠난 게 아니게 해달라고...

어린 내가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기도는 이 정도였다.


나의 불안함은 그나마 걱정에서 그쳤고 엄마는 새아빠랑 늘 늦게라도 돌아왔다.


그런 날엔 두 분 다  항상 술에 취해 있었다.

술에 취한 날은 어김없이 좁은 방에서 다툼이 일어났다.

피할 곳 없던 나와 여동생은 숨죽여 웅크리고 있었다.


엄마랑 둘이 단란하게 지내며 엄마품에 안겨서

잠들었던 나의 시간들은 모두 새아빠에게 빼앗겨 버린 것 같았다.


내게 남은 건 그저 지독한 불안함과 걸리적거리는 동생

불편한 집과  무섭고도 미운 새아빠였다....


새아빠는 엄마에게 드리웠던 죽음의 그림자가 찾아온 듯 아프기 시작했다.


내가 중학생이 되고 아프기 시작했는데 병원에서

내가 19살 이 될 때 돌아가셨으니 그때까지  입퇴원을 반복했다. 두 분은 그리고 시골 산골에 요양 목적으로 간이집을 짓고 살았다.


동생은 도시에 사는 고모네서 지내고 싶다고 가버렸고

혼자 남은 나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거 같은 집에 혼자 남았다.


벽지가 뜯어진 곳도 군데군데 있었는데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흙이 우수수 떨어지곤 했다.


종이가 발라진 나무판자 문은 잠금장치랄 것도 없이

문과 문틀에 못 하나씩 박아놓고 고무줄을 칭칭 감아 문단속을 하고 잠들었다.


추운 겨울 엄마가 퇴근 후 집에 왔을 때 연탄불이라도 꺼트려 놓았을  연탄집개로 많이도 혼이 났었는데


혼자 지내던 몇 년의 겨울은 연탄보일러가 아예 고장이 나서 전기장판 하나에 의지해서 지냈다.


나는 집이 제일 추웠다.

가스레인지에 물을 끓여서

쥐들이 오가며 갉아먹은 비누로 씻어야 했고

물을 끓여서 손을 녹여가며 빨래를 해야 했다.

잠을 자는 동안 벽에 흙이 다 부서져 무너질까 두려움에 아침을 맞이했다.


그렇게 철저히 부모의 돌봄은커녕

언제 오늘밤 무너질까 내일 아침엔 내가 눈을 뜰까 걱정 가득한 날들 속에 하루하루 견뎌가던 날들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엄마에게 버림받을까 두려워 울던 꼬마에서 진짜로 버림받아 버린 거처럼 아슬아슬

삶을 살아가기보다 버텨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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