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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정 Oct 25. 2024

대물림 되는 팔자

엄마는 딸에게 박복함도 물려주었다

나는 엄마 곁을 지나간 숱한 죽음들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있는 엄마의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 버렸다.


누구나 인생은 다들 소설책 한 권씩은 나올 만큼 사연 많은 이야기 속에 살아간다.

우리 모녀에게도 다를 바 없었다.


기구하게 버텨온 엄마의 소설 같은 삶이

'딸은 엄마 팔자 닮은 다는 말'

처럼 나에게도 이어졌다.


나를 낳아준 아빠의 존재조차 모르고 자란 7살.

나는 매일 같이 엄마가 일하는 식당 앞 골목에서 엄마를 기다리며 하루를 보내는 일이 제일 재밌는 놀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이름을 부르며 다정히 인사를 건네었던

낯선 아저씨가 있었다.


그 아저씨는 얼마뒤 아빠의 의미도 모르고 자란

내게 새아버지가 되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어느 아침.

엄마와 나는 식당이 있던 동네를 벗어나 그 아저씨가 운전하는 봉고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차 안에서 보던 바깥 풍경에 과일가게가 보였고

그중 나는 한여름의 싱싱한 포도가 먹고 싶었다. 

나는 곧바로 엄마에게 먹고 싶다 말해봤지만

늘 그렇듯  안 된다고 거절당했다.


우리 모녀의 대화 소릴 들을 아저씨는

당장에 과일가게 앞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내게 잘 익은 포도를 사서 건네어주었다.

고마울 수 없었던 친절한 아저씨는 내가 기억하는 새아빠의 처음이자 마지막 다정함 이였다.


그렇게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적당한 크기의

마당이 있고 마루가 있는 어느 작은 시골집이었다.

마루엔 무섭게 생긴 할머니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옆에는 기저귀를 차고 있던 제법

큰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나보다 3살 어렸던

그 아이는 그날 내 여동생이 되었다.


엄마는  친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이제 막 돌 지난 나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동생. 두 아이들과 먹고살아야 했고 쉽지 않았다.


앞 뒤로 엎고 안고 일을 할 수 없던 엄마는 죽음을 생각했지만  울며 불며 엄마에게 매달린 우리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셋다 살기 위한 선택으로  주변의 조언을 듣고 동생이었던 아들을 다른 집에 입양 보냈다.


눈물로 다시는 아이를  찾지 않겠다

다짐을 하며 보냈고 나를 데리고 살던 곳을 떠났다.

그리고 나를 등에 업고 고된 식당일을 하며

나를 키우며 살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를 데리고 힘들게 살아오던

엄마는 자신을 보호해 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그렇게 식당에 자주 오던 그 아저씨와 함께 봉고차를 타고 떠난 그날 엄마에겐 남편이

나에겐  새아빠와 여동생이 생겼다.


엄마와 새아빠는 무섭게 생긴 할머니와 인사를 나눈 후 잠시 자리를 떠났고 ( 아마도 동네를 둘러보러 간듯했다) 나는 멀뚱히 서 있었는데 할머니는 갑자기

마당에 우물펌프 있는 곳에 똥뭍은 기저귀를 던지며

"앞으로 네 동생이니깐 기저귀는 네가 빨아라!"

무서운 표정으로 호통을 치듯 말했고

나는 그 순간이 너무 무서워 울면서 쭈그리고 앉아

조물거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엄마와 새아빠가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 말하지 않았다.

왠지 모르게 그렇게 됐다.


딸은 엄마팔자를 대물림받는다는 말처럼  나 역시 엄마를 닮은 고된 팔자의 시작이었다. 그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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