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는 보통 “먹고, 자고, 싸고”만 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우리 아들의 공식은 조금 달랐다.
바로 **‘자고’**가 빠졌다.
우리 아들의 패턴은 이랬다.
먹고 → 싸고 → 울고. 끝.
분유 먹이고, 안아서 트림을 시키면 기가 막히게 토하는 걸로 마무리했다. 그냥 토도 아니고, 꼭 ‘분수토’였다.
마치 분수대에서 물 뿜듯이, “푸악!” 하고 내 등뒤에서 바닥을 향해 토하는 게 안쓰러워 보였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옷을 갈아입어야 했고, 바닥 걸레질은 기본이었다. 세탁기는 언제나 풀가동 상태였다.
빨래 건조대에는 아기 옷, 내 옷, 수건, 손수건이 층층이 걸려 있어 마치 빨래 숲 같았다.
“내가 지금 육아를 하는 건지, 세탁소를 운영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 내 진심이었다.
한 번은 정말 걱정되고 힘들어서 소아과에 들렀다.
“선생님, 우리 애가 분수토를 하루에도 몇 번씩 해요. 이거 괜찮은 건가요?”
의사 선생님은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위장이 약한 아기들이 그래요. 괜찮습니다. 6개월쯤 지나서 이유식 시작하면 멈출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6개월? 지금 하루도 버티기 힘든데, 6개월이라니…”
하지만 신기하게도, 정말 6개월이 지나자 분수토가 싹 멈췄다.
“아… 진짜 이유식의 기적이 있구나.”
그 순간, 그동안 빨래와 청소에 시달리며 울던 내 모습이 떠올라 허무하게 웃음이 났다.
그렇다고 아들이 까다로운 아기였느냐?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유식은 또 얼마나 잘 먹었는지 몰랐다.
조리원 동기들과 모여서 아기들 손에 과일이나 뻥튀기 같은 과자를 쥐여주면, 다른 아이들은 꼭 쥐고 주무르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장난을 쳤다. 그런데 우리 아들은?
잡자마자 바로 ‘냠’.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깨끗한 먹방.
그때마다 엄마들이 놀라워했다.
“아니, 애기가 저지레를 안 해? 어쩜 저렇게 바로 먹어?”
나는 그럴 때마다 속으로 흐뭇하게 웃었다.
“그래, 우리 아들. 남들이 못하는 깔끔한 먹방으로 엄마 고생값 하는구나.”
사실, 돌이켜보면 아들이 유난스러운 게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더 유난스러웠던 것 같다.
아이가 토하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지 병원에 뛰어가고, 울면 왜 우는지 끝없이 분석하고, 수유량을 매번 꼼꼼히 적고…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냥 아기니까 그럴 수 있었던 건데, 초보 엄마였던 나는 그걸 다 비상사태처럼 받아들였던 거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아들이 자라며 토도 멈추고, 잠도 자고, 이유식도 잘 먹고… 그 모든 게 시간이 해결해 주더라.
그런데 그때는 하루하루가 전쟁 같았다.
“이 아이는 왜 이렇게 안 자는 거야?”
“왜 이렇게 먹기만 하면 토하는 거야?”
내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또 웃기는 건 아들이 내 품에 안겨 있을 땐 그 모든 게 다 괜찮아졌다는 거다.
결국, 우리 아들의 신생아 시절은 **‘먹고, 싸고, 울고’**의 무한 반복이었지만, 그 안에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걸 배웠다.
육아는 정답이 없다는 것.
때로는 그냥 시간이 해결해 주는 일도 있다는 것.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 눈물 많고, 토하고, 울던 아기가 어느새 12살이 되어 허당끼 가득한 소년이 되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