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토 전쟁이 멈춘 건 이유식이 시작되던 때였다.
“6개월쯤 되면 나아질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그 말은 정말 기적처럼 맞아떨어졌다.
첫 숟가락을 먹던 날, 나는 눈물이 날 뻔했다.
‘아… 이제 매일같이 빨래 더미에 파묻히던 일상은 끝났구나.’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하나 더 있었다.
아들은 이유식을 시작하자마자, 엄마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특별한 능력을 발휘했다.
조리원 동기 엄마들과 가끔 모여 아기들끼리 놀게 했다.
모임 장소는 늘 비슷했다. 방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아기들 앞에 과일이나 떡을 쥐여주곤 했다.
다른 아기들은 손에 쥔 바나나를 주무르고, 바닥에 던지고, 얼굴에 문지르며 저지레를 했다.
“애들은 원래 그래. 잡고 느끼고 만지작거리는 게 발달이야.”
엄마들끼리 서로 위로하며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아들은…
잡자마자 바로 입으로 직행!
주무르지도 않고, 바닥에 떨어뜨리지도 않고, 그냥 ‘냠!’
모임에 있던 엄마들 모두가 동시에 놀라며 말했다.
“얘 뭐야? 영재는 저지레를 안 하고 바로 먹네?”
나는 그 순간, 속으로 작은 폭죽이 터지듯 뿌듯했다.
‘그래, 남들 다 어질러놓을 때, 우리 아들은 야무지게 먹는다!’
이후로도 아들의 먹방은 계속됐다.
집에서든, 외식 자리에서든, 음식 앞에 앉으면 두 눈이 반짝였다.
남의 집에 가서도 음식이 나오면 예의상 가만히 있지 않고, 오직 먹는 데 집중했다.
나는 깔끔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는데, 아이가 먹는 모습만큼은 늘 “정갈하다”라는 말이 딱 맞았다.
손에 묻은 음식을 옷에 비비는 일도 거의 없었고, 떨어뜨리는 법도 드물었다.
“애기엄마, 아들이 진짜 야무지게 잘 먹는다!”
어른들이 볼 때마다 해주는 말에 나는 내심 뿌듯했다.
“그래, 먹는 걸로 칭찬받는 게 어디야.”
야무지게 먹는 건 단순히 ‘잘 먹는다’는 걸 넘어, 내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온갖 난관을 겪으며, 또 신생아 시절 분수토와 울음에 지쳐 있던 내게, 아들이 음식 앞에서 보여주는 그 집중력은 큰 선물이었기 때문이다.
‘아, 얘는 이렇게라도 나를 위로해 주는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그냥 아들의 기질이었을 뿐이다.
야무지게 먹는 아기, 그게 뭐 대단하다고…
하지만 초보 엄마였던 내겐 그 작은 모습 하나에도 힘이 나고, 버틸 이유가 되었다.
육아는 늘 그렇다.
힘든 순간 속에서도, 아이가 보여주는 작은 변화 하나에 마음이 풀리고, 눈물이 멈추고, 웃음이 나는 거다.
12년이 지난 지금도 아들은 여전히 잘 먹는다.
다만 차이점이 있다면, 이제는 내가 조심해야 할 때가 있다는 거다. 냉장고에 남겨둔 내 간식을 홀랑 먹어버릴 때마다, 나는 예전과는 다른 종류의 눈물을 흘린다.
그럼에도 나는 안다.
그때 이유식 앞에서 야무지게 첫 숟가락을 받아먹던 그 표정이, 지금의 허당끼 가득한 아들 속에도 여전히 남아 있다는 걸.
결국 아들은 나에게 **“먹는 게 복이다”**라는 걸 몸소 증명해 준 아이였다.
야무지게 먹어주던 그 시절 덕분에, 나는 하루하루의 육아 전쟁 속에서도 웃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