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부터 시작된 파란만장한 여정은 12살 소년을 키우는 지금까지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입덧과 임신소양증 때문에 눈물 흘리던 날도 있었고, 제왕절개 수술실 앞에서 떨던 날도 있었다.
날마다 분수토를 받아내며 옷을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입던 시절도 있었다.
그 모든 순간은 당시에는 고생이었는데, 돌아보니 웃음이 된다.
나는 늘 ‘좋은 엄마’라는 숙제를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좋은 엄마보다는 ‘요란한 엄마’, ‘허둥지둥 엄마’에 더 가까웠다.
그럼에도 아들은 늘 내 곁에서 웃어주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었다.
“엄마가 제일 좋아.”
그 한마디에 다시 힘을 내고 버텼다.
육아일기를 이렇게 뒤늦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아이가 이미 12살이 된 지금에서야 비로소 처음 쓰는 육아일기라니.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웃기고, 더 뭉클하다.
그때는 바쁘고 정신없어서 기록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여유가 생겨 ‘아, 그때 내가 이렇게 살았구나’ 하고 돌아볼 수 있다.
아이와 나는 참 많이 닮았다.
먼지에 예민하면서도 허당인 성격, 고집은 세지만 또 누구보다 당당한 태도.
그러나 다른 점도 있다.
나는 소극적이었는데, 아들은 씩씩하다.
나는 혼자였는데, 아들은 친구들이 많다.
나는 어릴 적 사랑을 많이 받지 못했는데, 아들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그래서일까. 나는 아들을 보며 내 안의 상처도 조금씩 치유되는 기분을 느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며, 아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너’를 존중하려 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이다.
앞으로 아들은 더 클 것이다.
언젠가 여자친구가 생길 테고, 언젠가 나보다 더 멀리 나아갈 것이다.
그때 나는 아마 서운하고 질투도 나겠지만, 결국 또 응원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아이의 첫 번째 팬이자 평생의 친구니까.
육아는 끝나지 않았다.
아이는 자라지만, 엄마의 기록은 계속된다.
오늘도 나는 아들의 커다란 발을 보며 웃는다.
“그래, 여기까지 잘 왔다. 그리고 앞으로도 잘 가자.”
그리고 이렇게 말하고 싶다.
“육아는 힘들었지만, 재밌었고, 무엇보다 행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