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이렇게 컸을까.
아이가 이제는 나랑 키도 비슷하게 크고, 발은 훨씬 크다.
예전엔 내가 손을 잡아 이끌던 아이였는데, 이제는 내가 아들의 손에 이끌려 다니는 기분이다.
같이 걸으면 마치 내가 친구 같고, 심지어 사진을 찍으면 ‘엄마가 왜소해 보인다’는 말을 들을 정도다.
아들은 요즘 들어 엄마 말에 대꾸도 잘한다.
“영재야, 게임 그만하고 숙제 좀 해라.”
“엄마, 나 이미 다 했어. 숙제하고 게임하는 게 문제야?”
말이 점점 논리적이 되고, 나를 설득하려 든다.
어릴 적엔 “네, 알겠어요” 하고 순순히 따라오던 아이가, 이제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사춘기 직전 소년으로 변해버렸다.
자기만의 스타일도 고집한다.
내가 사 온 옷을 내밀면, 예전 같으면 그냥 입고 다녔는데 요즘은 다르다.
“엄마, 이건 내 스타일 아니야.”
“그럼 네 스타일은 뭔데?”
“보여 줄게. 온라인에서 내가 고를 거야.”
결국 아들은 자기가 원하는 옷을 사고, 나는 그 옆에서 배송 상태를 확인해 주는 도우미가 된다.
공부에는 큰 관심이 없다.
방에 들어가 보면 책상 위엔 교과서 대신 게임기가 놓여 있다.
나는 속이 터진다.
“도대체 공부는 언제 하냐?”
그런데 성적은 이상하게도 잘 나온다.
담임 선생님은 늘 말씀하신다.
“영재는 학교에서 생활도 적극적이고, 친구들도 잘 따릅니다.”
나는 믿기지 않았다.
집에서는 늘 물건을 잃어버리고, 숙제는 뒷전이고, 게임에만 몰두하는데… 학교에서는 모범생이라니.
이중생활이 따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들이 점점 더 기특하다.
내가 어릴 적 소극적이고 수줍었던 성격과 달리, 아들은 어디서든 당당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자연스럽게 중심이 되고, 자기 생각을 분명하게 말한다.
나보다 훨씬 씩씩하고, 주눅 들지 않는다.
어쩌면 나는 아들을 통해 내 안의 부족했던 부분을 보상받는지도 모르겠다.
“그래, 내가 못했던 걸 네가 해주는구나.”
그런 마음이 종종 든다.
물론 아들이 여자친구를 사귀게 되면 나는 아마 질투가 날 것이다.
엄마보다 다른 누군가를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쉽지는 않을 테니까.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여자친구에게 잘해주고 싶다.
“우리 아들 잘 부탁해요.”
내가 못 다 준 다정함과 수용을, 그 아이가 채워주길 바라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아기’라는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나이.
그러나 나에게 영재는 여전히 품 안의 아이 같다.
군대 가서도 엄마랑 같이 잘 거라던 그 아이가, 이제는 방에서 혼자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기 세계를 만들어 간다.
나는 오늘도 아들의 커다란 발을 보며 웃는다.
“벌써 이렇게 컸네.”
그리고 속으로 다짐한다.
‘얼른 커서 친구처럼 지내자. 나는 이제 엄마이자, 너의 첫 번째 친구가 될 준비가 되어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