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수용의 숙제

by 은나무


나는 어릴 적 부모님께 따뜻한 수용이나 다정한 사랑을 많이 받아본 기억이 없다.

엄마는 늘 작은 일에도 소리를 지르고, 매를 들었고, 화를 냈다.

그래서 나는 늘 눈치를 보며 자랐다.

‘내가 뭘 잘못했나?’ ‘또 혼날까?’ 그런 불안이 일상이었다.


그런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사랑과 수용이라는 단어가 참 낯설었다. 내 아이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지 늘 고민이었다.

육아 책을 뒤적이고, 오은영 선생님 강의를 보면서도, 나는 종종 죄책감에 휩싸였다.

‘나는 좋은 엄마가 아닌가 보다….’

밤마다 베개를 적시며 그렇게 울었던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다짐은 늘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 엄마처럼 영재한테 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아이를 때리거나 큰 소리로 혼내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았다.

그 대신,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를 때면… 입에서 욕이 나왔다.


“야, XX야!”

이게 나의 최후의 무기였다.




문제는 아들이 그걸 보고 배웠다는 거다.

5학년이 된 어느 날, 아들은 친구와 놀다가 갑자기 쌍욕을 했다. 그런데 기가 막힌 건, 화나서 한 게 아니라 장난스럽게 웃으면서 했다는 거다.

마치 “우리 엄마 따라 해 볼래?” 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는 배를 잡고 웃었다.

“야, 너 욕하는데 왜 이렇게 웃기냐?”

그리고는 자기 엄마에게 “영재가 욕했는데 너무 웃겨 엄청 찰지게 잘해”라고 보고했다.


순간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아들은 태연하게 말했다.

“왜? 나 욕 잘 못하는 거야. 우리 엄마가 나보다 더 찰지게 잘해. 내가 다 엄마한테 배웠다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멍해졌다.

‘그래, 아이들은 다 보고 배우는 거지.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다….’




나는 엄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부족하고 서툴렀다.

아들에게 늘 웃으며 사랑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현실에서는 짜증이 먼저 나고, 화가 폭발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용’이라는 숙제가 내 앞에 던져졌다.

아들이 내 마음 같지 않을 때, 성적에 관심이 없을 때, 게임만 붙들고 있을 때.

그럴 때마다 나는 나 자신과 싸워야 했다.


“괜찮아. 네가 너답게 크는 것도 좋아.”

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속으론 끓어오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돌아보면, 아들은 내가 주지 못한 사랑과 수용을 통해 자라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다 주지 못했지만, 그래도 노력했던 마음은 아이가 느끼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들은 항상 말한다.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엄마는 나한테 제일 잘해.”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울컥한다.

‘그래, 나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구나. 영재에게 나는 이미 최고의 엄마구나.’


사랑과 수용은 여전히 나의 숙제다.

나는 완벽한 엄마는 못 되지만,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애쓴다. 그리고 아이는 그런 나를 또 사랑해 준다.


부족하고 엉성한 엄마와, 허당 같지만 당당한 아들.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수용하며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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