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재는 어릴 때부터 뭐든지 ‘버리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작은 변화도 싫어했다.
나는 가끔 집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가구 위치를 옮기거나 생활용품 자리를 바꿨다.
그럴 때마다 영재는 어김없이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말을 하기 시작한 뒤부터는 아예 “원래대로!”라는 구호를 외치며 집안을 원상복구시키려 들었다.
특히 장난감에 관한 집착은 대단했다.
새 장난감을 사주면, 다른 아이들은 포장지를 뜯어 던져버리고 새 장난감에만 몰두하겠지만, 우리 아들은 달랐다.
“이거 버리면 안 돼. 이 포장지도 내 거야.”
상자, 비닐, 가격표까지… 모든 게 ‘소중한 내 물건’이었다.
게다가 작은 장난감 하나, 망가진 부품 하나조차 버리면 난리가 났다.
“엄마, 이건 내 거야. 쓰레기 아니야.”
내 눈에는 분명 쓰레기였는데, 아들의 눈에는 보물이었다.
결국 영재의 방은 쓰레기 더미인지 보물 창고인지 구분이 안 되는 상태로 점점 쌓여갔다.
그걸 정리하려면 정말 긴 타협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슬쩍 봉투에 담아 버리려 하고, 아들은 기가 막힌 촉으로 눈치채고 달려왔다.
“엄마, 내 거 어디 갔어?”
결국 몇 번의 협상 끝에 “이건 진짜 필요 없는 거잖아?” 하고 설득해야 겨우 버릴 수 있었다.
그래도 대부분은 그대로 남았다.
며칠전에도 그런 사건이 있었다.
집에서 입는 실내복이 작은 데다가, 팔 부분이 그만 찢어진 것이다.
아들이 들고 와서는 말했다.
“엄마, 이거 찢어졌어.”
나는 반가웠다. 드디어 버릴 기회가 온 줄 알았다.
“응, 어차피 작아져서 버리려고 했어.”
그런데 아들의 반응은 예상 밖이었다.
“안 돼! 절대 안 돼!”
순간 나는 웃음이 터졌다.
이미 팔이 끼이고 옆구리가 터진 그 옷이 뭐가 소중하다고.
그런데 아들은 진지했다.
“엄마, 이거 내가 아끼는 소중한 옷이야. 엄마 바느질 할 줄 알잖아? 오늘 일 다녀와서 꿰매 줘. 꼭 수선해 줘.”
나는 그 자리에서 할 말을 잃었다.
세상에, 애가 커서도 옷 하나에 이렇게 애착을 갖다니.
마치 낡은 곰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아이처럼, 아들에게는 모든 물건이 추억이고 역사였다.
사실 나는 정 반대 성격이다.
쓸모없다 싶으면 과감히 버리고, 생활에 변화를 주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가끔 영재의 물건들을 보면 속이 답답했다.
‘저건 쓰레기인데…’
그런데 아들에게는 ‘절대 버리면 안 되는 보물’이었다.
돌아보면, 이 아이의 집착 속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세상에서 자기만의 영역, 자기만의 소유를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버리지 않고 고집스럽게 지키려는 마음은, 어쩌면 세상에 대한 작은 저항이자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는 애정 표현 같았다.
오늘도 나는 바늘을 꺼내 들며 중얼거렸다.
“그래, 엄마가 꿰매 줄게. 대신 다음에 진짜 못 입게 되면 버리자.”
아들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안다.
다음에도 똑같은 대사가 돌아올 거라는 걸.
“안 돼, 절대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