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부터 나는 작가에게 도움이 된다 하여
스레드를 시작했다.
처음엔 나의 글을 조금씩 올리며 '브런치 작가 은나무'를
알리기 위해 시작했고 점점 그곳에서도 짧은 글을 공유하고 나누는 소통의 장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며칠 전.
<진짜 배려는 누구를 위한 걸까>
오늘 미용실에 초4 딸과 엄마가 왔다.
같이 일하시는 선생님이 아이 머리를 자르는데 계속 아이가 움직여서 힘들어하시고 손도 가위에 베였다.
보다 못한 내가 그 사이를 끼어들어 한마디 거들었다.
"딸~ 조금만 참자, 그래야 머리가 예쁘게 잘려."
하며 달랬다.
그런데 아이 엄마는 뒷자리 소파에 팔짱 끼고 다리도 꼬고 앉아서 아무 말도 없었다.
커트가 끝나고 나갔던 모녀가 1~2분 뒤 다시 들어와 말했다. 머리가 맘에 안 들어서 다시 왔다고 했다.
"길이도 안 맞고 전체적으로 머리를 개떡같이 잘랐어요."
"아까 아이가 많이 움직여서 그래요. 제가 다시 다듬어 드릴게요. 딸 이번엔 움직이지 말고 참고 잘 해보자"
라고 했더니 아이 엄마는 내게
"우리 애가 언제 움직였어요? 그리고 애들이 그 정도는 다 움직이지 그래서 전문가 찾아오는 거 아닌가요? 전문 가면 그런 것도 알아서 해야죠. 애가 듣는데 그렇게 말하면 상처받잖아요."
아니 아이 앞에서 상대방을 무시하며 개떡같이 잘랐다는 말은 괜찮고 많이 움직였다고 하는 말은 상처라니...
요즘은 배려도, 상처도, 웃음도 다 자기 기준으로만 정의된다. 결국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세상이다.
나는 이날의 일을 짧게 글로 써서 공유했다.
그저 이런 상황에서 배려의 기준과
나는 타인에게 배려받고 싶은 마음.
정작 나는 남을 배려하는지에 대한 생각.
"아이 앞에서 타인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겠다고 쓴 글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아이 엄마를 욕하고 아이를 조롱했다.
그걸 보자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그걸 바라던 게 아니었다.
나는 이어서 글을 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이 글을 쓴 이유〉
나는 초4 딸과 엄마 이야기를 쓴 이유가
누군가에게 “같이 욕해주세요” “공감해 주세요”가 아니었다.
그 글을 보며 불편했다면
우리 모두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했다.
우리가 과연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타인을
한 장면 한 문장으로 단정 지을 만큼
삶을 그렇게 바르고 깊게 살아왔나.
그 엄마 역시 딸 앞에서
타인을 향해 거친 말을 하면서도
정작 자신과 딸은 배려받고 싶어 했다.
나는 그 이중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결국 이 글은
누굴 비판하려 쓴 게 아니라
우리 모두의 모순된 얼굴을 한 번쯤 비춰보자는 이야기다.
작가의 글을 쓴 의도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모두들 엄마와 아이를 비난하기 바빴다.
결국 그 글은 삭제하고 말았다.
어른의 말과 행동을 보며 자라는 아이.
그 아이가 타인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배우는 건
결국 우리로부터인데 정작 그 엄마를 욕하는 사람들 역시
똑같이 타인을 향해 날 선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생각했다.
우리 모두는 과연 그럴 자격이 있을까.
누군가의 잘못된 행동을 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정작 나 자신은 얼마나 예의 있고 배려 깊게 살고 있는가.
상처받은 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향한 날 선 말은 결국 나에게 돌아온다.
나는 오늘도 사람을 만나며 일하고 글을 쓴다.
그 속에서 다시 묻는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고 있진 않은가.
그리고 나는 과연 누군가를 비난할 그럴 자격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