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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이모님이라 불렸다.

by 은나무


오늘 내가 일하는 미용실에 젊은 부부가 아기와 함께 왔다.
아직 돌을 지난 지 얼마 안 된 18개월 된 귀여운 아기였다.


부부 둘 다 커트를 하러 왔다고 했다.

남편이 먼저 머리를 자르고 이어서 아내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그녀가 자리에 앉아 거울을 보며 내게 말했다.
“이모님, 저는 이렇게 잘라주세요.”

순간 귀를 의심했다.


이모님…?


나도 모르게 손에 들고 있던 빗이 잠깐 멈췄다.

그리고 거울을 통해 아내얼굴을 다시 한번 자세히 봤다.


아 그래.

그럴 수 있어.

충분히 아기엄마가 어려 보여.


많이 봐줘야 20대 후반.

아기가 있으니 습관처럼 나온 말일 수도 있겠지.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어…
스스로를 다독이며 머리를 다듬었다.


마무리 후 계산할 때 다시 보니

그래 이십 대 중반일 수도 있어 앳되게 보이네.

내가 이모나이 될 수 있겠어.




아직 이모님 사건의 충격이 가시기 전

늦은 오후 단골 남성고객 한 분이 오셨다.


언제부턴가 내 나이를 잊고 사는 나는

아주 어려 보이거나 누가 봐도 많아 보이는 분들

외엔 전부 나보다 언니 오빠뻘로 보인다.


나보다 한참 오빠 같은 아재스타일 고객이

앉자마자 웃으며 하는 말.


“이모님한테 머리 자르는 건 처음이네요.”

“이모님이요? 제가 이모님이 되는 게 맞는 거예요?
그리고 저 예전에 고객님 머리 여러 번 해드렸는데요.”


“아, 그러세요? 왜 처음 같지? 오랜만이라 그런가?”

이번엔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아니 내가 어딜 봐서 이모님 소릴 들어야 하냐고..

그것도 하루 두 번씩이나!!!


“고객님, 실례지만 80 대생이세요? 90년대 생이세요?”

고생 많이 한 90년대 생이라 치면 그래 그럴 수 있지

이해하고 넘어가려던 참이었다.


“저요? 저는 82년생이요. 이모님은요?”


“아하하하하 82년 개띠요? 저도 개띠요.”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분은 첨부터 숙이고 있던 고개를

더 깊숙이 숙이며 말했다.


“제가 실수를 했네요. 죄송합니다…”


나는 억지 미소로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요. 그러실 수 있죠. 제가 관리를 너무 소홀했네요.”


아! 아깝다. 92년생이라고 해볼걸 큭큭큭




오늘 하루에 두 번.
‘이모님’이라는 말에 뼛속깊이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퇴근길에

친정 엄마랑 통화하며 이모님 이야기를 했다.


“너 엄마가 맨날 말했지? 화장도 좀 하고 다니고

옷도 좀 이쁘게 입고 다니라고 너 영재 낳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나 예뻤는데… 지금은 아주 아줌마 다 됐어...

미용실 다니는 사람이 그게 뭐냐?"


나는 그저 웃었다.

맞다.

엄마는 요새 맨날 만나면 잔소리했다.

왜 이러고 다니냐고....


그래도 그렇지 오늘 이모님은 아니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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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예쁘다’ '어려 보인다'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지금은 ‘편안하다’는 말이 더 좋다.
시간이 흘러가며 노화로 잃은 것도 있지만 그만큼

내면은 단단해진 것도 있다는 걸 이제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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