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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위의 나, 그리고 배려라는 기술

by 은나무


나는 20살에 운전면허를 땄다.

하지만 진짜 운전은 34살부터 시작했다.

이제 10년 차 무사고 경력이다.



사람들은 여자가 운전하면 괜히 긴장하곤 한다.

차선 변경만 해도 ‘아, 여자구나’ 하는 표정들.

그런데 나는 그런 시선에 개의치 않는다.



왜냐면 나는 꽤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운전 진짜 편하네요, 안정감 있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인정한다.

나는 운전을 잘한다.

여자라서가 아니라 그냥 운전을 잘한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운전 스타일이 좋았다.

속도감도 딱 적당하고 급가속 없이 안정적인 주행.

그전에도 여러 사람들의 차를 타봤지만 남편 차를 타면 늘 편했다. 그래서인지 자연스럽게 운전할 때 그의 습관들을 옆에서 익혔고 둘째가 태어난 뒤 본격적으로 운전을 시작했다.



처음엔 당연히 겁이 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금세 익숙해졌다.

남편의 주행 리듬이 내 몸에 배어 있었던 걸까.

운전대를 잡으면 나도 모르게 그의 습관이 나왔다.



방향지시등 켜는 타이밍 정차 후 부드러운 출발

차선 합류할 때 상대 속도까지 계산하는 여유.

그래서인지 내 차를 타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운전 진짜 편하게 잘한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그렇죠?’ 하며 웃는다.




하지만 도로 위에서 늘 기분 좋은 일만 있는 건 아니다.


운전하면서 제일 싫은 유형이 있다.

바짝 붙어서 따라오는 차.

마치 지금이라도 내 뒤꽁무니를 들이받을

기세로 달려드는 그들.

그렇게 붙어서 운전하면 앞차는 긴장되고 불편하다.

조금만 떨어져 달리면 될 텐데.

그게 그렇게 어렵나? 이해가 잘 안 된다.



처음엔 늘 양보했다.

위험해 보이면 옆으로 비켜주고 그냥 보내줬다.

‘저 사람은 급한 일이 있겠지.’

그렇게 이해하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은 점점 고마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배려를 받아도 눈인사 하나 비상등 한 번 켜주는

사람도 드물어졌다.



그러다 보니 가끔은 나도 욱한다.

뒤에서 바짝 들이대면 어쩔 땐 괜히 오기가 생긴다.

'그래? 그럼 너 나 못 앞질러.'

그래서 내 옆차선 차와 속도를 맞춰 ‘함께 방어운전’을 한다.

소심한 복수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한참 답답하게 만들어 주다가 슈웅 하고 달려가 버린다.


그 순간 잠시 뿐이지만 괜히 통쾌하다.




운전은 이상하다.

인간의 인격이 가장 솔직하게 드러나는 공간이기도 하다.



도로 위에서 배려 없는 사람은

대체로 일상에서도 배려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절대 끼워주지 않는 사람

자기 앞만 보며 액셀을 밟는 사람

남이 먼저 양보해 주면 ‘당연하다’는 듯 아무 말 없는 사람.



운전은 실력보다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걸

나는 10년 동안 배웠다.

남편에게 운전 실력을 배우면서

제일 먼저 배운 건 ‘운전의 예의’였다.

“다른 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마라.

너 하나 때문에 전체가 멈출 수 있다.”

그 말이 아직도 내 운전의 기준이 된다.



나는 운전을 좋아한다.

차도 좋아한다.

둘째가 다섯 살, 여섯 살이던 시절엔

그 아이랑 단둘이 경기도 안양에서

진도, 거제도까지 운전해서 여행도 다녔다.



남편은 내게 가끔 놀리듯 말한다.

“여자가 무슨 차 부심이 이렇게 많아?”

나는 웃으며 대답한다.

“난 운전이 좋아. 그래서 차도 좋아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걸 잘하면 더 좋은 거지.”



운전은 내게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나를 지켜보는 시간’이다.

도로 위에서 나오는 모든 감정

양보, 인내, 오기, 여유, 배려.



그 모든 게 결국 삶에서도 그대로 드러나니까.



오늘도 나는 내 속도대로 달린다.
누군가가 바짝 뒤를 쫓아와도,
이젠 예전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가끔은 비켜주고 가끔은 지켜내며.



그게 도로 위의 배려고
살면서도 꼭 필요한 기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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