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참, 내 마음을 들었다 놨다 한 하루였다.
늦은 오후.
미용실에 아빠와 아들이 함께 들어왔다.
남자아이는 머리가 길게 자라 레이어드 컷을 해야 했고
아빠는 아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일단 자르고 나서 더 볼게요.”
“그 부분은 이렇게, 저쪽은 그렇게.”
처음부터 요구사항이 많았다.
여기는 남성컷 전문샵이라 세세한 커트는
미용실에서 하셔야 한다고 정중하게 안내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정성껏 그의 요구에 맞춰 머리를 다듬었다.
하지만 마무리 후 그는 마치 시험을 보듯 아이 머리를 이리저리 만져보더니
“이 정도면 괜찮네. 근데 뒷머리 좀 더 잘라 주시죠.”
하며 또 요구했다.
그래서 조심스레 한 번 더 말했다.
“아버님 다음엔 미용실로 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여긴 그렇게 세밀한 시술은 하지 않습니다.”
그 말이 불쾌했는지 그의 얼굴이 일순간 돌변했다.
“뭐요? 지금 나보고 딴 데 가라고 했어요? 그게 고객한테 할 말이에요? 썩어빠진 정신 상태로 일하시네.
내가 뭘 세밀하게 요구했다고 그러세요 아줌마!
서비스정신 상태가 이따위예요?”
순식간에 남자는 큰소리로 자신을 뭘로 봤냐.
고객한테 그런 말 하라고 사장이 가르쳤냐.
사장 어딨냐, 당장 연락해라.
그는 내 얼굴 앞까지 다가와 위협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지금 저한테 썅년이라고 하셨어요?”
“썅이라고 했지, 썅년은 안 했어요! 왜요 ”
“지금 정신 나간 미친년이라고 하셨죠?”
“그럼 정신 나간 미친년이니까 이따위로 고객한테 하지 억울하면 아줌마도 욕해 이 미친 썅년아!"
그때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정신 나간 미친 새끼! 커트비 필요 없으니까 당장 나가!"
순간, 매장 안 공기가 얼어붙었다.
아이는 처음부터 아빠 얼굴 표정이 변하자마자 불안해하며 "아빠 무서워 그만해 그냥 가자"며 울먹이기 시작했고 큰소리가 나자 아이도 크게 소리 내 울기 시작했다.
“아빠 무서워, 그만해...”
그때 단골 고객님도 함께 말리시며
“이제 그만하시죠. 아이도 보고 있는데 너무 하시네요.
여기 다른 고객들도 있습니다 ”
그제야 그 남자는 여기 동네에 소문낼 거다 본사에 전화하겠다며 오히려 본인이 씩씩대며 나갔다.
그가 나가고 나서야 눈물이 왈칵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내가 무슨 잘못을 한 걸까?’
‘이런 말을 들어가며 일을 해야 하나...’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한 시간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실장님! 오랜만이에요!”
한동안 안 보이던 단골손님이었다.
“나 예산으로 이사 갔어요. 이제 여기 못 와요. 근데 오늘 서울 올 일이 있어서 실장님 보고 가려고 일부러 들렀어요.”
뒤이어 함께 들어온 친구분이 웃으시며 말했다.
“이 양반이 꼭 여기 들러야 한다고 1시간을 걸려 왔다니까요.”
머리를 다 깎으신 고객님이 친구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어때 나 좀 젊어졌지?”
“어 진짜 그러네. 머리다듬고 10년은 어려 보이네.”
그렇게 웃고 떠들며 잠시 대화를 했고
“이제 실장님 보러 못 올 것 같지만 가끔 서울 오면 또 들를게요.” 하시며 가셨다.
그 순간 아까의 분노와 상처가 천천히 녹아내렸다.
아까 그 사람은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지만
이 고객님은 1시간을 걸려 나를 찾아왔다.
나를 믿고 나를 좋아해 주는 고객이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웠다.
예전의 나라면 아마 그 진상 고객에게
끝까지 맞붙었을 거다.
나를 깎아내리는 말에 더 큰 말로 대응했을 거다.
그게 내 방식이었다.
세상이 나를 함부로 대해도
나는 지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사람.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화가 났지만 맞서 싸우지 않았다.
(마지막 한마디 정신 나간 미친 새끼는 시원했지만^^)
마음이 상했지만 그 감정을 끌고 집까지 가지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두고 나왔다.
이제는 안다.
참는 게 약한 게 아니라는 걸.
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는
두렵거나 불리해서가 아니라
이제는 내 평화를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감정이 폭발했던 하루였지만
그만큼 나는 성장했다.
상처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으려 애썼던 하루.
오늘도 나는 내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 더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