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현실 부부의 사랑은 '설렘' 보단 내편이었다.

by 은나무


우리 남편은 상남자 타입이 아니다.



크게 소리치지 않고 일은 똑 부러지게

조직에선 지점장이자 팀장이지만

밑에 사람을 존중하고 세워가며 일한다.

운전할 때도 어지간해선 클락션 한 번 안 누르고 참는다. 불편한 서비스도 '다음엔 안 가면 되지' 쪽.

분쟁을 키우기보다 수습하는 사람이었다.



그래도 물에 물 탄 사람은 아니다.

판단이 서면 정확히 움직이는 스타일.

다만 기본값이 ‘평화’인 사람이다.



어제 미용실 진상 고객에게 모욕을 몽땅 맞고

집에 와서 나는 그냥 하소연만 했다.

이미 감정은 웬만큼 식었고 '또 지나가겠지'

하고 넘기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이날 남편이 달랐다.

내 얘기를 듣자마자 얼굴이 굳었다.
“왜 바로 전화 안 했어?”

"전화하면 뭐 해 가게까지 오는데 1시간 걸리잖아.

그리고 뭐 내가 그런 걸로 쫄기나 해?"
그랬더니 남편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곧바로 이성 모드 ON.

CCTV 확인. 증거 확보. 이후 대응 정리…

평소 분쟁 피하던 그 사람이 이번엔 내 앞에 서서

단단하게 움직였다.

“괜찮아? 무서웠지?” 하며 감정은 품어주고

상황은 차갑게 정리했다.



나는 순간 뭉클했다.

늘 객관적이고 차분한 사람이라

기대 없이 털어놓은 건데 내 자존심이 긁힌 자리 앞에

남편이 방패가 되어 서 있었다.

그 자세 하나에 '아, 우리가 한 팀이구나'가 선명해졌다.



우린 사랑 얘기할 때 자꾸 ‘설렘’부터 찾는다.

나도 폰 배경에 남자 배우 사진 잔뜩

드라마 보며 가슴 몽글거리는 거 좋아한다.

솔직히 말해 요즘은 '남편 없으면 못 살겠다'면서도

막 설레는 감정과는 거리가 조금 있었다.



근데 어제 알았다.

오래가는 관계를 붙드는 건 설렘보다

언제나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일이라는 걸.

내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내 입장이 무너질 때 나보다 먼저 단단해지는 사람.



남편은 늘 말한다.
당신 같은 왈가닥(?)은 웬만한 남자 못 버텨.”
주변에서도 늘 그랬다.

은정이는 착한 남편 잘 만났다.”
맞다. 어제는 그 말에 내가 수긍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내 자리를 지켜주고

내가 흔들릴 때 '내가 여기 있어. 걱정 마' 하고 서 주는 사람. 그게 내 남편이다.



결혼이란 게 결국 이런 것 같다.
매일 설레지 않아도 매일 같은 편인 것.
세상 앞에 혼자 서지 않게 내 옆을 ‘지켜주는’

사람과 하루를 이어가는 것.



어제의 나는 상처받은 ‘직장인’이었고

집에선 누군가의 ‘아내’였다.

그런데 남편의 포옹과 차분한 대응 사이에서

나는 ‘한 사람’으로 다시 일어섰다.



오늘도 일하러 나왔다.

어제보다 덜 흔들릴 것이다.
“내 사람”이 내 편에 서 있다는 확신은 생각보다 큰 방패니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5화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