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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14년 차 부부의 결혼기념일

by 은나무


오늘은 결혼기념일이다.

솔직히 예식은 안 올렸으니 그냥 혼인신고 한날.

그래도 특별한 오늘.
누군가에게는 꽃다발과 와인? 오붓한 시간? 선물?

이 있겠지만 나에게는 피부과 예약이 있었다.



특히 명절연휴 내내 일하던 나에게 어제오늘은 휴무날이기도 했다.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오늘은 나를 좀 챙겨야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혼자 예약한 피부과로 향했다.
보톡스 시술받고 거울 속 내 얼굴을 보니
살짝 뻣뻣 하지만 기분은 산뜻했다.
“오늘은 나를 위한 기념일이니까.”


결혼기념일이라 해도
늘 함께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각자 자기 시간을 보내는 게
오래 함께 가는 비결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초반엔 선물도 하고 같이 오붓하게 데이트도 하고

그랬는데 사실 뭐 이쯤 되니깐 꼭 챙기기 귀찮기도 해졌다.



점심 무렵 남편에게서 톡이 왔다.
“오늘 결혼기념일이니까, 잠깐 들를게.”
솔직히 잠깐 설렜다.
갑자기 왜 이래 이 남자? 나이 먹더니 변했나? 선물 준비 한 건가?' 하는 기대가 살짝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오자마자
말없이 고무장갑을 끼고 싱크대로 향했다.
설거지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쓸고 닦고

분리수거까지 마치더니
“이게 내 선물이야.”
그 한마디만 남기고 다시 회사로 돌아갔다.



그게 그의 사랑 방식이었다.
나는 커피 한 잔 내려서
“선물 잘 받았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말 한마디로 남편은 충분히 기분 좋아했다.



싱크대는 반짝였고 마음도 조금 정리됐다.
서로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고
필요할 땐 조용히 도와주는 것.
그게 아마 오래된 부부가 나누는 기념일의 형태 아닐까.


오늘은
보톡스로 얼굴의 탄력을 챙기고
남편의 손길로 마음의 주름을 조금 펴냈다.



사랑의 모양은 매년 달라지지만 내 남편은 늘 한결같다.



"처음엔 잘해주고 나중에 사랑이 식는 부부들 많잖아. 나는 그냥 처음부터 지금까지 늘 똑같이 호들갑스럽지 않게 변하지 않고 한결 같잖아. 이게 좋은 거야. 처음에 잘해주다 나중에 변하면 뭐 해. 차라리 나처럼 처음에도 지금도 적당히 해주는 게 더 좋은 거지. 아직도 모르겠어?"



맞다 남편은 늘 내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도 지금도 그냥 적당한 온도로 식지 않고 유지 중이라고.

처음엔 왜 이렇게 뜨겁지 않냐, 나를 사랑하는 거 맞냐

확인하고 재촉했다.

그러나 이 남자 스타일은 언제나 변함없이 내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방법이 가장 큰 사랑이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의 일상을 존중하는 것
그게 우리 부부가 결혼 14년 시간을 지켜온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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