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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늘 누군가의 감정 쓰레기통이 되었다.

by 은나무


사람은 누구나 화날 수 있다.
하지만 그 화를 어디에 누구에게 쏟는지가

그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오늘 나는 누군가의 엉뚱한 분노를 온몸으로 맞았다.




아침부터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스레드를 열고 오늘도 승리하자며 기분 좋은 인사도 나눴다.



점장님의 건강 문제로 요즘 혼자 일하는 시간이 늘어

오늘도 혼자 근무하는 거 외엔 별다른 일은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원하게 마시며 내가 좋아하는 리쌍의 음악을 틀어놓고 흥얼거리며 출근했다.



문을 열고 어젯밤의 먼지들을 걷어내고 공기를 환기시켰다.

오늘은 혼자 근무니까 내가 듣고 싶은 힙합 노래를 선곡했다.

기분 좋게 일할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손님들이 하나둘 들어왔고 어느새

커트와 염색이 동시에 진행되던 평범한 오후였다.




가위를 들고 남성 고객의 머리를 다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며 가끔 오셨던 중년의 여성이 들이닥쳤다.
“지금 당장 커트 돼요?”
말투부터 다급하고 표정에는 짜증이 묻어 있었다.

항상 밝은 사람은 아니었기에 어디서 짜증 나는 일이 있었나 보다 생각하고 나는 마음에 담지 않았다.



“지금 바로는 어려워요. 오늘 혼자 근무 중이라서요.
이 고객님 커트랑 염색 마무리 해야 해 드릴 수 있어요.”
내가 정중히 설명하자 여자는 평소보다 더 퉁명스레 되물었다.
“그럼 몇 분 있다 오면 되죠?”
“저희는 예약제가 아니라 몇 분 뒤라고 말씀드리기 어려워요. 오시는 순서대로 시술해 드리고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그녀의 얼굴이 굳어졌다.
“거참 오늘따라 빡빡하게 구시네.

우리 엄마가 저기 차에 타고 있는데 꼭 여기서 기다려야 해요? 순서 되면 불러주면 되잖아요.”
“죄송해요. 제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서요.”
그러자 여자는 한숨을 쉬며 “그럼 있을게요.”

하고 의자에 털썩 앉았다.
그 태도에는 분노가 가득했다.



나는 애써 무시했다.

어딘가에서 이미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염색약을 바르고 10분간 기다리는 사이

짧은 커트 손님 한 분이 들어왔다.

고객님은 커트가 아니라 그냥 기계로 빡빡 밀면 돼서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시술이었다.



그 시간 동안 충분히 가능하다 판단해 남성 고객을

앉혔는데 그녀가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



“내가 먼저 왔는데 왜 저 남자부터 해요?!”


나는 최대한 침착하게 설명했다.
“지금은 제가 10분 정도 여유가 있어서 짧은 커트를 하는 겁니다. 어머님은 커트랑 샴푸까지 시간이 좀 걸려서요.”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건 니 사정이고! 내가 먼저 온건 맞잖아!

장사 그딴 식으로 하면 망해!”
그리고는 갑자기 욕설이 쏟아졌다.
“싹수없는 년! 장사를 × 같이 하네!”



그 순간 기분이 나빴다.

가게에서 고객들에게 이미지 관리도 잘하고 있었고 가뜩이나 혼자인 데다가 고객이 셋이나 대기 중이다.

그래서 더 참았다.
“손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제가 처음부터 설명드렸잖아요.”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았다.
“개념 없는 년, 미친년! 장사도 할 줄 모르는 년”
그리고는 차에 타고 있던 어머니를 데려왔다.



“엄마, 그냥 가자니까!”
“얘가 그래? 어린 게 싹수없는 년이네!”
그 노년의 여성은 다짜고짜 욕을 하며 내 팔을 잡고 꼬집기 시작했다.
“개 같은 년, 나쁜 년! 내 딸한테 네가 그랬어?”
나는 황당하고 기가 찼다.
손님 세 분이 그 장면을 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자는 계속 욕을 퍼붓고 그 어머니는 나를 꼬집으며

구석으로 몰아세웠다.
그들의 목소리가 가게 안을 가득 메웠다.
“장사를 개 × 같이 하네! 씨발년!”
그들이 문을 박차고 나가려는 순간 나는 참을 수 없었다.



“저기요! 잠깐만요. 가지 마세요. 지금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그러자 여자가 몸을 돌려 나를 밀치며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뭐라고? 이 썅년아?”
그녀의 손이 내 어깨를 밀쳤고 나는 팔을 뿌리쳐 밀어냈다.



“손대지 마세요. 폭행입니다. 지금 신고하겠습니다.”
그녀는 비웃으며 “해라, 해!” 하고 나를 또 밀쳤다.
나는 침착하게 휴대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하지만 그녀가 다가와 내 전화를 뺏었다.
몸싸움 끝에 다시 뺏어 들고 주소를 외치듯 말했다.



“지금 ○○로 ○○, 미용실이에요. 빨리 와주세요.”



그들은 내가 신고 전화를 마치자 빨리 가자며 차가 있는 쪽으로 걸어갔고 나는 먼저 앞서가 그들 차 사진을 찍었다.
그들이 가고 나면 찾을 길이 없을 거 같았다.



나는 다시 가게로 들어와 고객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금방 마무리해 드리겠습니다.”



마지막 손님을 마치고 경찰이 도착했다.
나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이야기를 들은 경찰은

동영상 사진 차량번호 챙겨서 경찰서로 직접 방문해
“폭행과 업무방해로 신고하세요.”라고 말했다.
그 밖의 주의 사항을 설명하고 경찰들은 자리를 떠났다.



고객들이 다 돌아간 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남편은 당장 내게 오겠다고 했지만 오지 말라 했다.
한 시간 거리였다. 회사 일도 있고...

마음도 어느 정도 추슬러졌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쉽게 화를 낸다.
조금만 불편해도 폭발하고 상대를 향해 욕을 퍼붓는다.



오늘은 그 분노가 왜 나에게 향해야 했을까.
나는 그저 오늘 최선을 다해 일하는 사람이었을 뿐인데.



그렇지만 오늘도 나는 누군가의 분노를 대신 맞고도

속으로 삭이고 웃으며 고객을 맞이하는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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