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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by 은나무


나는 엄마와 단둘이 살던 시절이

또렷하게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일곱 살 새아빠를 만나던 그때부터 나는

같은 생각을 혼자 되뇌었다.



‘엄마랑 둘이 살 때가 좋았는데 왜 엄마는 이 결정을 했을까.’



그 시절의 나는 작고 여린 아이였지만
하루하루 둘이 살던 때를 그리워했던

감정만큼은 분명히 내 안에 남아 있다.




엄마는 단둘이 살던 그때에도 내겐 늘 무서운 사람이었다.
식당 앞에서 혼자 놀다 보면 언제나

‘조심해라’ ‘멀리 가지 마라’는 소리가 따라왔다.
나는 그 말이 사랑이라는 걸 몰랐다.
그냥 엄마는 늘 무섭고 화가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중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식당 앞 유치원에 잠시 다녔던 어느 날
선생님이 물감 수업을 한다며 물감이 있는 친구들은 준비해 오고 없는 친구는 같이 나눠 쓰면 된다고 했다.



나는 엄마에게 물감을 사달라고 졸랐다.
“꼭 사야 해?”
엄마는 피곤한 얼굴로 물었고 나는 울먹이며 고집을 부렸다.
결국 엄마는 나를 이끌고 유치원에 가서 선생님께 물었다.
선생님 정말 다 사야 하나요?”
선생님은 부드럽게 웃으며

“없으면 같이 나눠 써도 돼요”라고 말씀하셨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엄마는 내 손을 세게 잡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걸었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화를 냈다.
나는 울었고 이유를 몰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물감 때문이 아니라
살아내느라 지쳐 있던 한 여자의 분노였던 것 같다.



그 시절 또 다른 기억은
식당 앞에서 놀다 동네 친구네 집에 따라갔던 날.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만화영화를 보며 재밌게 노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해가 기울 무렵 식당으로 돌아왔을 때
엄마는 나무 빗자루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내 한쪽 팔을 붙잡고

마구 때렸다. 나는 가까스로 뿌리치고 울며 도망쳤고

옆집 가게로 숨어들었다.
“이러다 애 잡겠다. 은정엄마 그만 좀 해. 집에 별일 없이 잘 왔잖아. 아휴 무슨 애를 그렇게 잡어"
주변 어른들이 말리던 목소리 엄마의 울음 섞인 숨소리.
그 모든 게 내 어린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았다.




이제야 엄마 마음을 조금 알 거 같다.
그건 사랑의 반대가 아니라
사랑을 표현할 줄 몰랐던 엄마의 방식이었다는 걸.



엄마는 그때 이미 곁의 모든 사람들을 떠나보내고
마지막 남은 나 하나에 의지해 버티던 사람이었다.
그 외로움과 막막함이 화가 되어 나에게 쏟아졌던 건 아닐까.



딸들이 아이를 낳으면 가장 먼저 친정엄마를

생각한다는 말이 있다.

그때 엄마의 대한 희생과 고마움 감사함으로

눈물이 난다고들 했다.



나 역시 엄마가 됐을 때 처음 떠오른 사람은 엄마였다.
나는 내가 낳은 아들이 너무 귀하고 소중한데 우리 엄마는 나에게 왜 그리 차가웠나... 나를 왜 그리 모질게 대했을까..

엄마에게 더 서운한 감정만이 떠올랐다.



가끔은 혼자 질문도 했다.
‘우리 엄마는 나를 왜 이렇게 만든 걸까.
왜 불행한 삶을 넘겨주고도 미안해하지 않았을까.
왜 다른 엄마들처럼 나를 사랑해주지 않았을까.

나를 위해 희생하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

마흔다섯을 앞둔 나는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때의 엄마는 세상과 싸우느라 나를 품을 틈이 없었던 거다.



그러나 이제 우리 모녀는 달라졌다.
엄마는 신앙을 통해 스스로를 용서했고 자신을 사랑할 줄 알며 진심으로 “미안하다”라고 말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나도 엄마를 미워하던 딸에서
엄마의 인생을 이해하려는 여자가 되었다.



그래서 이 글을 쓰려한다.
과거의 엄마와 현재의 엄마
그 사이에서 자라난 나의 이야기.



상처로 시작했지만 결국 사랑으로 이어진
우리 모녀의 오래된 여정을 기록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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