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때 코를 자주 킁킁거렸다.
목이 간질대고 가래가 넘어가는 기분이 들면 목으로도
흠흠 하며 수시로 소리를 냈다.
숨을 쉬면 코끝이 간질거리고 답답해서 목으로 넘어가는 무언가 불편해서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났다.
그게 습관처럼 몸에 붙어 있었는데
새아빠는 그 소리를 참지 못했다.
“왜 그렇게 코를 킁킁대고 시끄러워 밥맛 떨어지게!”
그 말이 나오면 밥상 위 공기가 식었다.
나도 뭔가 불편해서 그러는 건데 '왜 그런 거냐'
한번 묻지도 않고 그냥 나쁜 버릇인양 새아빠는
무조건 나를 타박만 했다.
엄마는 밥숟가락을 놓고 나를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방문이 닫히자마자 나를 세워놓고 말했다.
“제발 좀 조용히 해. 왜 자꾸 킁킁거려! 그거 나쁜 버릇이야! 아빠가 싫어하잖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엄마의 눈은 분명 슬펐지만
그 슬픔이 나를 향한 건 아니었던 거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왜 그때 엄마가 나를 지켜주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내 편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부터는 잘 모르겠다고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자주 코피가 났다.
거의 매일 났던 거 같다.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코피는 자연히 멈췄다.
세수를 하다가 세숫물에 밥을 먹다가 흰쌀밥 위에
그냥 숨을 쉬다가도 피가 뚝 떨어졌다.
휴지를 코에 끼우면 숨쉬기가 힘들어 입으로 숨을 쉬었다.
엄마는 “또 코 후볐어?” 하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새아빠는 “맨날 비실비실 허약하기는 저래서 뭐가 되겠냐.”
나는 그 말보다 엄마의 외면이 더 아팠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그릇을 씻거나 빨래를 개며
아무 일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때마다 나는 엄마가 왜 나를 보지 않을까
왜 한마디도 해주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엄마는 이미 너무 많은 걸 짊어진 사람이었다.
친구네 집에는 언제나 웃음이 있었다.
아빠가 퇴근할 때마다
비닐봉지 안에 인형이나 간식이 들어 있었다.
어느 날은 친구 아빠가 엄청 커다란
‘미미의 집’을 사 들고 들어왔다.
분홍색 문과 계단이 있는 친구 품에 넘치는
커다란 미미의 집.
나는 미미인형은커녕 종이인형만 갖고 놀았고 가끔 못생긴
마루인형 하나 특별한 날 선물 받으면 낡은 양말 같은걸 가위질과 바느질을 해가며 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마저 나는 행복했다.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들과 마트를 가서 장난감 코너에만 가면 나는 늘 여자아이들 장난감 코너에 한참을 머물렀다.
그때 갖고 싶었던 마음에...... 지금이라도 살까 망설였던 적이 수없이 많았다.
한편 친구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무척이나
자연스럽게 넓은 아빠 품에 푹 안겼다.
나는 옆에서 그 장면을 바라보며
괜히 손끝을 주먹 쥐었다.
가슴 한쪽이 이상하게 뜨겁고 간질거렸다.
‘나도 저런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 말이 마음속에서만 맴돌았다.
집에 돌아오는 길 골목 전봇대 불빛 아래
코피가 또 떨어졌다.
손으로 닦으며 걸었다.
그날따라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엄마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 거칠게 묶은 머리
손에 쥔 검은 봉지엔 술병이 들어 있었다.
나는 “엄마 나 코피 났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냥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불빛 아래에서 엄마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엄마는 나와 더 잘 살고 싶어서 결혼했을 거다.
하지만 그 결혼은 엄마를 더 지치게 만들었고
나를 더 조용하게 만들었다.
엄마랑 둘이 살던 마당이 있는 월세방에서 단짝 친구랑
매일 새로운 모험을 즐기며 티 없이 맑고 빛나던 나는
눈치를 보고 혼날일이 많아졌고 외로움이 많아졌다.
나는 그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콧속에서 아직도 철 냄새가 나는 것 같다.
그건 피 냄새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말하지 못한 마음의 냄새 같기도 하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엄마는 아빠가 기분이 안 좋아 내게 한마디라도 하기 시작하면 엄마가 나를 데리고 나가 대신 혼내던 이유를.
이제는 조금 안다.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아빠의 화살이 나에게 향하지 않게 하려고
자신이 나를 혼냈다는 걸.
그래서 이제는
그날 문밖에서 내 어깨를 움켜쥐던 손을 미워하지 않는다.
엄마는 본인이 나서서 더 크게 혼을 낸 것이다.
새아빠한테 혼나는 나를 보기 안쓰러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