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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눈빛이 두려웠던 밤

by 은나무


그 시절 동네 입구엔 아주 작은 구멍가게가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엔 넓은 자판이 깔려 있었고
위쪽엔 다양한 과자들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작은 먹거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맨 끄트머리엔 껌, 사탕, 젤리, 쫀득이, 아폴로, 짝꿍, 네거리사탕, 밭두렁 같은
그 시절의 달달한 간식들이 줄지어 있었다.


정면엔 방 하나가 있었는데
거기서 60대 초반쯤 되어 보이던 주인할머니가
계산도 하고 생활도 함께 했다.


오른쪽엔 철재 진열대 세 개 정도가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의 틈을 두고 서 있었다.
각종 인스턴트 음식, 생필품, 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웬만큼 다 그 안에 있었다.

가게 앞에는 길이 있었고 그 길 건너엔 평상과

백구 두 마리가 있었다.
평상엔 늘 동네 어른들이 옹기종기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웃곤 했다.
그 시절엔 또 외상도 있었다.
노트에 이름을 적어두고 나중에 한꺼번에 갚는 식이었다.

엄마가 없을 때 돈이 부족해서
할머니께 외상을 하고 오면
엄마가 나중에 돈을 건네며 갚곤 했다.
그게 우리 가족의 일상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퇴근 후
나와 동생을 불러 세웠다.
씻지도 못한 얼굴 숨이 가빠 보이는 모습.
그런데 그날의 엄마는
그 어느 때보다 무섭고 차가웠다.

나는 겁이 났다.
‘오늘은 또 무슨 일로 화가 났을까.’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도
잘못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엄마는 손에 잡히는 대로 우리를 혼내곤 했다.
먼지 떨이개, 효자손, 빗자루, 대형빗, 파리채…
그중 약한 것들은 부러지고, 휘어지고, 깨지기도 했다.


그래서 지인이 만들어 준 나무 몽둥이를
“앞으로는 이걸로 쓸 거다”라며 건네받은 적이 있었다.
가래떡보다 조금 더 굵은 굵기에 손잡이 구분까지 매끄럽게 니스칠된 몽둥이였다.

그날 밤 엄마는 바로 그 몽둥이를 찾아들었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엄마의 눈빛이 섬광처럼 차가웠다.

“동네 가게 할머니가 그러는데,
미정이가 자꾸 자판대 아래 불량식품을 슬쩍 가져간대.”

엄마는 낮게 말했다.
“처음엔 한두 번이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습관처럼 그런다더라.”

엄마의 화는 정당했다.
엄마가 평생 강조하던 네 가지.

1. 거짓말하지 말 것.

2. 남을 속이지 말 것.

3. 남의 물건 탐내지 말 것.

4. 어른들 보면 인사 잘하기.

그중 1번과 2번을 어겼으니
엄마의 분노는 컸다.

엄마는 동생을 매로 혼냈다.
동생은 울며 뒹굴었지만
끝내 “잘못했어요” 한마디를 하지 않았다.
매번 그랬다. 혼나면서도 억울해했다.
그럴수록 엄마는 더 화가 났고
몽둥이질은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화살은 나에게로 향했다.
나는 울면서 두 손을 모았다.
“엄마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뭘 잘못했는지 알아?”
“네 동생을 잘 챙기지 못했어요.”

나는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엄마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나도 동생을 잘 돌보지 못한 죄로 함께 맞았다.

속이 너무 상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늘 같이 혼나고 같이 맞았다.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도 엄마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몸에 멍이 들도록 맞아도 나는 엄마 옆에서

조용히 일을 도왔다. 그럴 때면 엄마는
“너도 꼴 보기 싫으니까 옆에 있지 마!” 소리쳤다.


가슴이 아팠다.
그래도 그냥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엄마의 화가 가라앉길 바라며.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조금씩 엄마의 화는 가라앉았다.
그 시절 나는 마음속에 자꾸 상처가 쌓였다.
초등학교 5~6학년이 되자 이유가 생겼다.
‘나는 왜 맨날 같이 혼나야 하지?’
‘왜 엄마는 내 편이 아니지?’

그 질문들이 마음속에서 자라났다.
엄마의 매서운 눈빛, 차가운 말투, 거침없는 욕설.
그 모든 게 싫었다.

엄마는 내가 알던 따뜻했던 엄마가 아니었다.
나는 점점 엄마가 두려워졌다.


그리고 그 두려움 속에서,
엄마가 점점 멀어지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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