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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엄마를 닮아갔다

by 은나무


국민학교시절 새 학기마다 가정조사서를 써내야 했다.
부모 이름, 하는 일, 최종 학력 같은 걸 적고
주민등록등본을 함께 제출해야 했다.



그 종이가 나는 참 싫었다.
등본에는 ‘엄마와 아빠는 부부’, ‘여동생은 자녀’,
그리고 맨 아래 내 이름 옆에는 ‘동거인(호주 이 ○○)’
이렇게 적혀 있었다.



나는 엄마의 진짜 자녀인데도, 늘 ‘동거인’으로 표시됐다.
아빠와 여동생과 성씨도 달랐다.
그 한 장의 종이를 교실에 들고 들어가는 일은
언제나 부끄러움과 수치였다.



국민학교 6학년 아침조회가 끝나고 담임이 말했다.
“가정조사서랑 등본 다 가져왔죠? 아직 안 낸 친구는 내일까지예요.”
친구들이 종이를 꺼내 앞줄로 넘겼다.
나는 맨 뒤에 앉아 가방 속 종이를 꼭 쥐었다.
이름 칸 옆에 ‘동거인’이라는 글자가
손바닥에 닿는 듯 뜨겁게 느껴졌다.
그날 나는 한참을 고개 숙이고 자리에 앉아 있었다.



원래 나는 밝고 당찬 성격이었던 거 같다.

내 7살 이전의 기억을 보고 지금의 내 성격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환경이 태어난 기질 위에 성격을 바꾸는 거 같다.



그 종이 한 장 때문에
나는 점점 작아지고, 눈치를 보고,

늘 주눅이 든 아이가 되어갔다.



전과책 하나 문제집 하나 없어도

늘 혼자 방바닥에 누워 열심히 공부했지만

잘하든 못하든 부모의 관심은 없었다.
가끔 선생님께서 칭찬 한번 해주시면 친구들은 “네가?”

하며 야유 섞인 소리로 놀려댔다.
그래서 더 움츠러들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아무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았다.



새 학기만 되면 그 가정조사서 때문에 예민하고 우울해졌다.
엄마 딸이 내가 아니라 동생인 것 같은 현실이 싫었고
그 상황을 만든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전날 저녁.

책가방을 내려놓고
엄마에게 그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 써서 내일까지 내야 돼.”
엄마는 마른빨래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냥 네가 알아서 써.”
그 말 한마디로 대화는 끝났다.
엄마의 피곤한 눈빛은 늘 벽 같았다.
나는 종이를 접어 가방 속에 다시 넣었다.



등본에 있는 내 이름 옆의 괄호 속 남자 이름.
나는 그게 내 친아빠 이름인 줄 알았다.
죽은 사람 이름은 올릴 수 없다는 걸 그땐 몰랐으니까.
그래서 혼자 생각하고 결론을 내렸다.

‘아, 이 사람이 내 아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 무렵 나는 점점 내 친아빠에 대해 궁금해졌다.
엄마는 한 번도 내게 아빠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었다.
남겨둔 사진 한 장 없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단 한 번도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도...



나중에야 알았다.
엄마가 내게 절대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
동생이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아빠가 갑자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엄마는 두 아이를 둘러업은 채
살 길이 막막해 여관에 들어갔다고 했다.
검은 봉지에 소주 몇 병을 사 들고.



한참 소주를 마시고 취한 엄마는 남동생 얼굴 위로 베개를 들어 올렸고 내가 엄마에게 매달리며 울었다고 한다.
내가 뭘 알았겠나, 그저 엄마한테 칭얼거리고 있던 거겠지.



엄마를 붙잡고 우는 내 울음소리에
엄마는 결국 죽기를 포기하고 둘 다 업고

일자리를 구할 수 없어 결국 남동생을 입양 보냈다고 했다.



그 후로 엄마는 나만 업고 식당일을 시작했다.
그래서 그때의 ‘호주’라고 쓰인 이름,
그게 내 친 남동생 이름이었다.
법적으로 그 이름은 내 옆에 호주법이 폐지될 때까지 따라붙게 된 거였다.



그런데 그런 사연을 몰랐던 그때

나는 엄마가 점점 미워지기 시작했다.
엄마가 새아빠를 만났기 때문에

나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 같았다.

엄마의 선택이 결국 내 인생이 된 것 같았다.



동생이 밉거나 동생 때문에 같이 혼나면 나도

엄마처럼 욕을 하고 동생에게 매를 들었다.

머리채를 잡기도 했다.
나 대신 그 자리에 있는 동생이 미웠다.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그렇게 다짐했지만 화가 나면 엄마처럼

목소리가 커지고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게 싫었다.

그런데 멈출 수가 없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더 이상 소심하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그 방식이 잘못됐다.



다정하거나 배려하는 법을 모르던 나는

엄마처럼 감정이 앞섰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을 돌리지 못했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학교에서도 눈에 띄는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싸움도 많았고 말도 거칠어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날 학교 복도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을 보며
잠깐 멈춰 섰다.
울고 난 얼굴에 굳은 입매
눈빛이 꼭 엄마 같았다.



그제야 깨달았다.
나는 이미 엄마를 닮아가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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