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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그 사람은 나의 엄마였다

by 은나무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나는 본격적인 문제아가 되어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쉬는 시간마다 웃고 떠드는 친구들 사이에서
나도 조금은 ‘멋져 보이고 싶었다.’



그 시작이 담배였다.
학교 화장실에 서너 명이 모여
창문 너머로 연기를 뿜으며 낄낄거리던 그날
화장실 문이 갑자기 열렸다.
학생부 선생님의 눈빛이 번쩍였다.



“너희 지금 뭐 하는 거야?”
담배꽁초가 바닥에 떨어졌고 심장이 귀 뒤에서 쿵쿵 뛰었다.



그날 오후 담임은 말했다.
“은정이 어머니 학교로 좀 모시고 와.”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부터 집에 돌아가기 싫었다.
엄마는 분명히 나를 죽일지도 몰랐다.
욕을 퍼붓고 매질을 하고
이불 뒤집어쓰고 울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는 그날따라 쉬는 날인지

뒷마당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다.
내 손엔 아직도 담임선생님이 써준 ‘보호자 호출장’이 구겨져 있었다.
나는 엄마를 보자마자 울음부터 터져 나왔다.



“엄마… 나 사실 담배 폈어.
학교에서 걸렸고 선생님이 엄마 부르래…”



엄마는 빨래를 널다 말고 잠시 나를 바라봤다.
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그냥 빨랫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나는 두 눈을 꼭 감았다.
이제 욕이 쏟아지고 손찌검이 날아올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천천히 내게 다가와
내 어깨를 감싸 안았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호기심에 그랬어?
울지 마. 그만 울어 계속 울면 머리 아파. 엄마가 학교에 같이 가서 선생님 만날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 품에서 나던 비누 냄새와
햇빛에 데워진 빨래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쳤다.
그날 엄마의 손길은 낯설고 따뜻했다.



방 안으로 들어오더니 엄마가 말했다.
“엄마도 어릴 때 방황 많이 했다. 니 마음 엄마가 알지.
담배는 몸에 해로우니 안 피우면 좋겠지만
너무 겁먹지 마. 괜찮아.”



그 목소리에는 처음 듣는 온기가 있었다.
무섭고 거칠던 사람이 갑자기 나를 이해해 주는

따뜻한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낯설었다.



학교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교무실 문 앞에서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문이 열리자
낮은 허리로 선생님들께 연신 인사했다.
“제가 잘못 가르쳤습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교무실 밖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엄마의 등이 너무 작아 보였다.
햇빛이 교실 창을 비추며
엄마의 머리카락 사이로 흰빛이 스며들었다.
그 장면이 어쩐지 마음을 쓰라리게 했다.



‘내가 잘못했는데 왜 엄마가 저렇게 굽신거릴까.’
짜증과 미안함이 뒤섞여 그 자리에 서 있는 게 힘들었다.



잠시 후 교무실 문이 열렸다.
엄마는 나와 내 친구들이 서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이 녀석들 벌 좀 단단히 받고

다음부터는 담배 피우면 안 된다!”
그리고는 환하게 웃었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보였다.
엄마는 정말 화가 난 게 아닐까?
왜 저렇게 웃을까?



며칠 뒤 나는 집을 나갔다.
엄마가 꼬깃꼬깃 따로 모아둔 비상금까지 훔쳐 들고

나간 가출이었다.
일주일 만에 지쳐 돌아왔을 때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나는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매를 들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는 나를 시내로 데려가
새 신발, 새 옷을 사주고 따뜻한 밥까지 사주셨다.
“배고팠지? 담부터 그러지 말자.”



그날의 엄마는 달랐다.
마치 나를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조심스러워했다.
식당 창가에 앉아 밥을 먹는 내내
엄마는 내 눈치를 살폈고
그 눈빛은 지난날의 분노와는 달랐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엄마는 나를 더 몰아붙이면 내가

무너질 걸 알았던 것 같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고, 엄마만의 지혜였다.
나는 엄마의 마음을 그땐 몰랐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엄마가 나를 사랑하긴 하나보다’라는 생각을 했다. 다만 엄마의 사랑은
항상 세상과 싸우느라 거칠고 불편했을 뿐이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늘 같은 사람이었다.
단지 내가 너무 어렸고
그 마음을 볼 눈이 없었을 뿐이다.



그때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그래도 그때 그 사람도 나를 사랑하는 나의 엄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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