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엄마는 내게 자주 말했다.
“누구네 딸은 좋은 데 시집가서 사위가 장모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아냐? 용돈도 주고, 수시로 찾아와서 챙기고, 전화도 자주 한대. 근데 나는 혼자 있어도 이것들은 뭐”
그 말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그때마다 마음이 살짝 저릿했다.
엄마는 원주에 있는 원룸촌 원룸들 중
작은 원룸에서 혼자 살았다.
우리가 가도 앉을자리가 겨우 하나였고
사위가 왔다고 닭을 삶아낼 부엌도
하룻밤 재워줄 방도 없었다.
우리가 내려가면 밥은 늘 우리가 밖에서 대접했다.
그래도 나는 나름대로 엄마를 챙겼다.
내기 혼자 살던 시절엔 매달 용돈을 드렸고
만날 때마다 지갑 속 현금을 몽땅 꺼내 쥐여드렸다.
엄마 장을 내가 다 봐드리고 두 손에 잔뜩 들려
집으로 돌려보냈다.
하지만 결혼 후엔 달라졌다.
이젠 남편이 번 돈으로 아이 둘과 살아가는 살림이었다.
빠듯한 생활비 속에서 용돈 한 번 드리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말했다.
“시집가더니 엄마는 신경도 안 쓰냐?
지만 잘 먹고 잘 살지.”
나는 잠시 웃으며 넘겼지만
그 말 뒤에 섞인 건 섭섭함이 아니라 질투 같았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스르르 식었다.
“미안하다. 그래도 잘 살아줘서 고맙다.”
그 말 한마디만 있었어도
내 마음은 덜 쓰렸을 것이다.
어릴 때도 그랬다.
엄마는 항상 새아빠를 먼저 챙겼다.
좋은 반찬이 있으면 새아빠 밥상 위에 올려놓고
나는 옆에서 눈치를 봤다.
그때 느꼈던 감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나는 늘 엄마에겐 두 번째 사람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도 결혼 후에 남편을 무조건 먼저 챙겼다.
남편은 출근 전 따뜻한 밥을 먹어야 했고
퇴근 후엔 편히 쉬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갓 출산을 하고도 혼자 육아를 하며
남편 밥상을 차리던 시절이 그 믿음의 증거였다.
이제 와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 나는 ‘그게 사랑이고 도리’라 여겼다.
아마 엄마에게 배운 사랑의 방식이 그거였던 것 같다.
둘째는 12월 겨울에 태어났다.
첫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나이였다.
산후도우미를 쓸 형편이 못 되어
나는 직접 몸을 추스르며 아이와 가정을 돌봤다.
눈이 소복이 쌓이던 12월의 어느 아침 첫차를 타고
엄마가 아기를 보러 오셨다.
나는 그 당시 힘들어서 만류했지만
“딸이 애를 낳았는데 안 가볼 수가 있냐”며 오셨다.
엄마는 막 태어난 아기를 보고
“아이고, 이쁘다, 이쁘다” 하며 연신 웃었다.
그 웃음은 진심이었지만 그게 다였다.
아기를 안은 채 엄마는 내게 물 한 잔 따라주지 않았다.
저녁엔 내가 엄마 밥상을 차렸고
밤엔 아기와 씨름하며 잠 한숨 못 잤다.
남편도, 첫째도 잠이 들고 집안이 고요해질 무렵이었다.
새벽 다섯 시쯤, 겨우 의자에 기대어
눈을 붙였을까 말까 한 순간
거실 쪽에서 덜컥 문 여는 소리가 났다.
밖으로 나와보니 엄마가 옷을 챙겨 입고 있었다.
얼굴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야, 찬밥 남은 거 없냐?"
나는 놀라서 얼른 엄마에게 다가갔다.
“엄마, 미안해. 방금 애 재워놓고
잠깐 졸았어. 밥 새로 해드릴게.”
“됐어! 내가 새벽에 깨는 거 뻔히 알면서
누가 물어보는 놈 하나 없고 기다려도 말이 없더라.
찬밥 있으면 줘, 찬물에 말아먹고 지금 가련다.”
엄마의 말투는 날카로웠다.
나는 서러움이 밀려왔다.
“엄마, 나 애 낳은 지 얼마 안 됐어.
하루 종일 잠도 못 자고 애 보느라 정신이 없는데
이렇게 화내면 어떡해? 엄마는 왜 맨날 엄마만 생각해!”
말을 하면서 눈물이 터졌다.
그때 방에서 남편이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채
엄마를 진정시키려 애썼다.
“장모님, 무슨 일이세요?”
“밥도 안 주고 애 키우느라 바쁘단다.”
“에이, 그러셨어요?
제가 바로 밥 차려드릴게요.”
남편은 나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엄마를 달래 방으로 모셨다.
남편은 내게 와 말했다.
"장모님 진짜 밥 때문에 화나신 거야? 이해가 안 가네
보통 엄마가 딸 챙겨주러 오시지 않나? 울지 말고 있어
내가 챙겨 드릴게."
그렇게 그날의 아침 난리는
겨우, 겨우 끝이 났다.
그날 이후로도 나는 자주 생각했다.
엄마는 늘 나에게만
세상에서 제일 가까운 사람처럼 굴다가
또 제일 낯선 사람처럼 돌아섰다.
의지하는 건지 아니면 내게 기대는 건지 모르겠지만
엄마의 말 한마디 그 말의 온도는
언제나 나를 무너뜨렸다.
나는 엄마에게 사랑받는 순간보다
상처받은 순간을 더 선명하게 기억했다.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가 미워지지 않는다.
그게 참 이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