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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by 은나무



새아빠는 내가 중학교 올라간 지 얼마 안 돼서

아프기 시작했다.
매일같이 술을 마시던 사람이었으니까

결국 간이 버텨주질 못했던 거 같다.



그때부터 병원에 입원했다 나왔다를 반복했다.
엄마는 병실에 붙박이처럼 있었고 집에는 늘 나 혼자였다.



흙벽이 부서질 듯 금이 가 있던 방
밤이 되면 천장이 내 머리 위로 무너질까 봐

눈을 감지도 못했다.



숨만 쉬어도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고 천정엔 쥐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소리가 불안하게 만들었다.
찢어진 벽지 사이로 손가락만 대봐도 흙먼지가 내려앉았다.
그 집에서 혼자 자는 게 제일 무서웠다.



그쯤 여동생은 할머니가 고모네로 데려가 있었다.
엄마는 새아빠를 돌보느라 늘 병원에 있었고
나는 혼자 밥을 해 먹고 빨래를 하고 고장 난 연탄보일러 대신 전기장판에 의지해 살았다.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새아빠가 병원비 때문에
입퇴원을 반복했던 거 같기도 하다.
증상이 좀 나아지면 잠시 퇴원하고 심해지면 입원하고 반복했다.



술 끊어야 한다는 의사 말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술을 마셨다.
엄마는 “이 사람은 이제 술 없으면 못 살아” 뭐라 하면서도
결국은 새아빠 옆을 지켰다.
그러다 둘이 우리 집에서 버스로 두 시간 걸리는 더 깊은 시골로 이사 갔다.



거기엔 고물 더미를 쌓아둘 마당이 있었고
엄마는 “이제 여기에서 엄마 아빠가 지낼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이 유난히 허전하게 들렸다.
왜냐면 나를 그 흙집에 혼자 두고 떠났으니까.



나는 그때 엄마가 미웠다.



'엄마가 불쌍한 것도 힘든 것도 다 알겠는데
그래도 나는 엄마의 딸이잖아.

아무리 아빠가 아파도 나 혼자 남겨두면 안 되는 거잖아.'

어린 마음에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결국 새아빠는 몇 년 뒤 내가 19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길고도 길었다.

지친 나는 힘들어 보이는 엄마가 불쌍해 새아빠가 빨리

가시기를 바랬다. 그래야 모든 게 정리될 것만 같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병원에서 만난 날 내 손을 붙잡고
“여보, 나 너무 아파.”라고 말했다.
그 말에 잠깐 마음이 흔들렸다.
그래도 나는 속으로 ‘이제 제발 그만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만 싸우고, 그만 아프고, 그만 취했으면.
그게 내 진심이었다.



새아빠 장례를 치르고 나서 엄마는
그 흙집을 정리하고 떠났다.
“조금 쉬었다 올게.”
그 말만 남기고 엄마는 친한 동생네로 갔다.
그때 나는 혼자서 주유소 숙식 알바를 시작했다.
퇴근하고 들어와도 아무도 없고
라면 냄비에서 김이 올라오면
그 김 속으로 내 얼굴이 뿌옇게 사라졌다.



그렇게 엄마와 나는 각자 살았다.
엄마는 새아빠가 떠난 후에도 다시 누군가에게 기대었고,
나는 또 내 식대로 세상을 버텼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나 진짜 너무 지친다. 우리 같이 살면 안 돼?”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은정아, 나는 내 인생을 살아야 해.”
그리고 다시 만난 그 사람을 따라 원주로 떠났다.



지금 엄마는 혼자 산다.
그 남자와는 오래전에 끝났다고 했다.
그래도 엄마는 그 도시를 떠나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곳,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엄마는 그곳에서 다시 터를 잡았다.
외로움이 엄마의 말투에 녹아 있었고
그 외로움이 또다시 나를 흔들었다.



나는 엄마를 미워했지만 완전히 미워할 순 없었다.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해가 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땐 왜 그렇게 살아야 했는지
왜 엄마는 늘 누군가의 곁을 떠나지 못했는지.



나도 이제 어른이 되어 보니
엄마의 그 외로움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래도 상처는 여전히 진행형이었다.
엄마는 이제 혼자 남았고
나는 여전히 엄마를 생각하면
가슴 한구석이 무너진다.



엄마를 불쌍하게 생각하는 마음과
여전히 나를 지치게 하는 엄마에 대한 미움이
풀리지 않는 매듭처럼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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