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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후에도 엄마의 전화가 두려웠다.

by 은나무


결혼 후 나는 전업주부로 지냈다.
엄마는 어쩌다 강원도 원주까지 가게 되어 그곳에

터를 잡고 혼자 살고 계셨다.
가끔 “이제 엄마 옆에 내려오라”는 엄마의 말에

웃으며 넘겼지만 사실 그 말에는 늘 묘한 거리감이 있었다.



저녁 여섯 시가 가까워질수록
나는 부엌 시계를 자주 흘깃거렸다.
가스레인지 위엔 국물이 자글자글 끓고
식탁 위엔 젓가락이 반듯이 놓여 있었다.



그때였다.
조용하던 공기 속을 가르며 전화벨이 울렸다.
“엄마.”
휴대폰 화면에 뜬 두 글자.
손끝이 순간 멈췄다.
심장이 천천히 그러나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하실까.
누구를 욕할까, 누구를 탓할까.
어떤 한숨과 신세 한탄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어릴 땐 엄마의 목소리가 매질의 전조였고
지금은 그 한마디가
내 하루의 균형을 흔들어놓는 신호였다.




결혼을 앞두고 있던 시절
엄마는 전화를 걸어와 내게 말했다.
“네가 뭐가 모자라서 애 딸린 집에 시집가냐.”
그 말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가진 것 하나 없었고
혼수도 없이 도움 이라곤 엄마 외엔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큰소리로 말했다.
"모자라지 않은 딸인데 왜 그런 집에 가냐고!”



그 말이 고맙기도 서운하기도 했다.
엄마의 사랑은 늘 거칠고 그 거침 속에

애정이 섞여 있었지만 나는 그땐 몰랐다.
그저 상처로만 남았다.



살림을 합치기 위해 분주하던 어느 날
술에 취한 엄마의 전화가 걸려왔다.
다른 딸들은 시집갈 때 혼자 남은 엄마 불쌍하다고
몇 천씩 손에 쥐여주고 간다는데
“니년은 그런 것도 없고, 너만 잘 살겠다고? 썅년.”
그 말은 내 심장을 깊게 베었다.
엄마가 아무리 힘들고 외로워도
그건 내겐 너무 독한 말이었다.


한 번은 아이들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간 날이었다.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지금 애들 데리고 ○○ 와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엄마는 퉁명스레 말했다.
“좋겠다, 너는 팔자 좋게 놀러나 다니고”
그리고는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그 한마디가 내 하루를 무너뜨렸다.



나는 괜히 죄책감이 밀려와

그날 하루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엄마의 기분이 내 하루를 덮고
내 기분은 가족에게 옮겨갔다.
남편이 묻는다.
“무슨 일 있었어?”
나는 그저 고개만 저었다.
엄마의 감정이 내게 옮겨오고
내 감정이 또 남편과 아이들에게 번져갔다.
그 사슬은 끊기지 않았다.


한밤중 낯선 번호로 전화가 왔다.
병원 응급실이었다.
술에 취해 길에 쓰러진 엄마를
누군가 발견해 전화를 건 것이다.
“따님 맞으세요? 여기 ㅇㅇ 병원 응급실입니다.

어머니께서 술에 취하셔서 쓰러져 계신 걸 신고해서 모셔왔습니다.”
그 말에 다리가 풀렸다.
아기와 초등학생 아이 둘을 둔 내가 그 시간에
당장 원주로 달려갈 수도 없었다.



그날 밤 술이 깬 엄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
“나쁜 년, 싸가지 없는 년, 개 같은 년
내가 죽어도 눈 하나 깜빡 안 할 년.”
그렇게 욕을 퍼부었다.
나는 울지 않았다.
대신 핸드폰을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주방 시계의 초침 소리만 들렸다.


어릴 적엔 엄마가
“은정아!” 하고 부를 때마다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매를 맞을까 두려워서였다.
결혼 후엔
“은정아.” 그 다정한 부름조차
내 하루를 무너뜨릴까 두려워졌다.



엄마의 목소리는 여전히
내 안의 어린 은정을 깨운다.
그 시절의 냄새, 공기, 두려움이
전화벨 소리와 함께 되살아난다.



결혼 후에도 나는 여전히
엄마의 전화가 두려웠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나를 다시 어린 시절로 데려가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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