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일찍 엄마와 새아빠는 함께 일을 나갔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고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늘 엄마가 일하는 곳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던 때와
다르게 엄마가 어디에 있을까 언제 돌아올까 기다리는
그때의 나는 날마다 불안하고 또 불안했다.
엄마의 부재 속에 나는 혼자 학교를 가며 동생을
집 근처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유치원에서 동생을 찾아 집으로 데리고 왔다.
나는 동생을 챙기며 연탄불 위에 프라이팬을 올렸다.
계란을 풀어놓고 대충 저으며 익히면
노란색이 금세 갈색으로 변했다.
그걸 반으로 나눠 동생에게 건네주면
동생은 늘 여기저기 흘리며 먹었다.
대소변도 가리지 못해 옷을 적시곤 했다.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몰래 그 옷을 빨았다.
작은 대야에 찬물을 받아놓고 조물조물 비비면
손끝이 얼얼했다.
그래도 저녁에 돌아온 엄마가 화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그저 손을 움직였다.
나중에 커서 엄마랑 대화하다 알게 되었다.
엄마는 사실 다 알고 있었고
그런 내가 안쓰러웠지만 속으로 삼킬 수밖에 없었다고.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늘 엄마가 화를 낼까 무섭기만 했다.
가끔 엄마가 신신당부를 하고 간 연탄불 가는 걸
깜빡할 때가 있었다.
여지없이 엄마가 돌아오면 불은 꺼져 있었다.
엄마는 급히 번개탄을 찾아 불을 붙여
연탄집개에 달린 번개탄을 휘휘 몇 번 허공에 저었다가
불이 붙으면 얼른 연탄 불부터 살렸다.
그리고 난 후 엄마는 등 뒤에서 나무자루를 들었다.
등에, 종아리에, 매질이 이어졌다.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하고 갔지! 까먹지 말라고!!"
엄마의 목소리는 칼날 같았다.
나는 눈물이 나도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부터 울면 뭘 잘해서 우냐고 더 맞았으니까.
밤이 되면 방 안은 술 냄새로 가득했다.
엄마와 새아빠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매일 술을 마셨다. 소주잔이 아닌 맥주잔?
거기에 가득 따라 마셨다.
나는 종종 소주를 사러 심부름을 가기도 했다.
가로등 불빛이 없는 골목길
주황빛 전봇대 아래에서 숨을 고르고
손에 쥔 봉지가 흔들리지 않게 꼭 쥐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길 언덕에 500년 된 엄청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었는데 밤 심부름을 다녀올 때
느티나무를 지나는 길은 늘 무서웠다.
느티나무 아래 겨울 공기 속에서 나는 늘 작아졌다.
어느 날 밤.
엄마와 아빠가 심하게 싸우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아빠가 넘어지자
엄마가 그 위로 올라타 목을 조르며 외쳤다.
“죽어, 죽어, 이놈의 새끼야 차라리 죽어버려”
그 소리를 들으며 나는 숨이 막혔다.
무서웠다.
아빠가 죽을까 봐가 아니라 엄마가 사람을 죽일까 봐
엄마가 감옥에 갈까 봐 겁이 났다.
두렵고 떨렸다.
나는 문을 열고 울면서 밖으로 뛰쳐나가
동네를 돌아다니며 외쳤다.
“우리 집 좀 도와주세요.”
그날 이후로
나는 엄마가 웃는 모습을 한동안 거의 보지 못했다.
엄마는 일을 다녀와도 말이 없었고
손에는 늘 상처가 있었다.
그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을 때마다
냄새가 났다.
기름 냄새, 연탄 냄새, 술 냄새,
그리고 피곤한 사람의 냄새.
나는 그 냄새를 싫어했지만
그게 엄마의 냄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엄마는 나를 자주 혼냈고 때로는 내게 욕을 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너도 저리 가버려.”
그럴 때면 나는 말없이 눈물을 삼키며 엄마뒤를
조용히 따라갔다.
엄마가 등을 돌리고 매몰차게 나를 대해도
나는 그저 엄마가 전부였다.
나는 그 등을 보며 자랐다.
그 무게가 뭔지 몰랐지만 그게 나의 시작이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