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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울음을 삼켰던 겨울

by 은나무


새집이라 부르기엔 너무 낡았다.

문을 열면 바로 방이고 부엌은 밖에 따로 있었다.
흙벽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고

문틈에는 신문지가 끼워져 있었다.



방은 한 칸뿐이라 우리 넷이 함께 누웠다.
이불을 펴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부엌으로 가려면 신발을 신어야 했고
그마저도 흙바닥이라 비가 오면 진흙이 들이닥쳤다.



그 집엔 처음엔 수도가 없었다.
마당 한쪽에 녹슨 펌프가 있었는데
물을 길으려면 먼저 물을 붓고 펌프질을 해야 했다.
겨울엔 그 펌프가 얼어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는 대야에 빨래거리를 담고

내 손을 꼭 잡은 채 마을 위쪽 냇가로 갔다.
숨이 하얗게 피어오르는 새벽
엄마는 얼음을 깨고 빨래를 했다.



나는 엄마 옆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호호 불며 물에 젖은 옷을 주워 담았다.
손끝이 시렸지만
엄마 옆에 있다는 게 그때는 좋았다.
빨래를 끝내고 돌아오는 길
엄마의 손은 갈라져 피가 맺혀 있었고
나는 그 손을 잡지 못하고 옆에서 걷기만 했다.



그 무렵부터 내 옆에는 네 살짜리 여자 아이가 있었다.
새아빠의 딸 나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었다.
나는 갑자기 언니가 되었고
엄마는 나에게 “동생 잘 봐야 한다”라고 말하곤 했다.



처음엔 함께 놀며 웃었지만
어느 날 그 애를 잃어버렸다.
골목길 따라 술래잡기를 하다 한눈을 판 사이
그 애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마을을 뛰어다니며 이름을 부르다 결국 울음을 터트리며 집으로 돌아갔다.



한참 뒤 동네 아주머니가
길가에 누워 잠든 그 아이를 안고 돌아왔다.



그날 밤 엄마는 부엌에서 내 종아리를 걷혔다.
“언니가 되면 동생을 잘 챙겨야지.

이러다 잃어버렸으면 어떡할 뻔했어!.”
차갑고 단호한 말이었지만 그보다 더 아팠던 건 억울함이었다.



나는 왜 갑자기 생긴 애 때문에 혼나야 하는지
왜 엄마는 내 마음은 한 번도 보지 않는지
그 생각이 어린 마음에 너무 서러웠다.
눈물이 뚝뚝 떨어졌지만 울면 더 맞을까 봐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날 이후 나는 울음을 삼키는 법을 배웠다.



밤이 되면 방 안은 금세 차가워졌다.
연탄불이 꺼질까 봐 하루에도 몇 번씩 불통을 들춰봤다.
엄마는 늘 “불 꺼지면 우리 다 얼어 죽는다”라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무서워 잠을 자다가도 자주 눈을 떴다.
옆에서는 엄마가 아닌 동생이 자고 있었다.
나는 등을 돌린 채 이불 끝을 움켜쥐었다.
그때부터 엄마 품은 내 자리가 아니었다.



밖에서 엄마가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밤이면

나는 매일 울면서 기도했다.
교회를 다녀본 적도 없는데 그때 처음 기도를 배웠다.
‘하나님, 엄마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 주세요.’
그 말 한마디를 마음속에서 몇 번이고 되뇌었다.



밖에서 엄마 오는 소리가 들리고 곧

방문이 열려 엄마가 들어오면
그제야 안도하며 숨을 쉬었다.
엄마는 왜 울고 있냐며 피곤한 얼굴로 나를 달랬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날의 추위는 잠시 사라졌다.



나는 그 흙집에서 기다림과 참는 법을 함께 배웠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살피는 법.
아이의 울음을 달래는 손.
늦은 밤에도 잠들지 않는 마음.
그게 그 겨울의 공부였다.



엄마와는 둘이 살던 때보다 더 멀어졌고
나는 점점 말을 아꼈다.
이제 엄마 품에 안길 수도 없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대신 연탄불의 온기를 품고 잠들었다.



그 온기가 꺼지지 않기를 바라며
나는 그 겨울 내내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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