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때의 엄마가 조금은 이해된다.
늘 나를 혼내고,
화를 내고,
세상을 원망하던 엄마의 얼굴 속에
이제는 내 얼굴이 겹쳐 보일 때가 있다.
거울 앞에 앉아 아침마다
피곤한 얼굴을 쓸어내릴 때면
문득 엄마가 떠오른다.
그때 엄마도 이런 얼굴로 하루를 버텼겠지.
돈을 벌어야 했고,
아이를 키워야 했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했던,
그 지독한 외로움의 하루를.
나는 그걸 미움으로만 봤다.
엄마는 왜 저렇게 불안하고, 왜 늘 화가 나 있을까.
하지만 이제 안다.
그건 미움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는 걸.
하루라도 무너지면
다시 일어날 자신이 없던 사람의 두려움.
엄마는 그걸 이겨내느라
세상을 향해 성을 쌓았던 것이다.
내가 아이를 낳고,
살림을 하고,
삶의 무게에 숨이 막히는 날들이 쌓여가면서
그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그토록 매서웠던 건
자신이 지탱해야 할 삶이
너무 벼랑 끝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엄마는 참 무서운 사람이다.”
그렇게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이제는 그 말이 다르게 들린다.
그 무서움은 나를 위해
세상을 온몸으로 막아내던 방패의 표정이었다.
요즘 나는 가끔
엄마의 말투로 아이를 혼낸다.
그리고 그 순간,
놀라서 숨이 멎는다.
“아… 나도 엄마처럼 되어가고 있구나.”
남편도 말한다.
"갈수록 장모님이랑 똑같아. 생김새까지."
그 말이 나쁘지 않다.
이제는 그 닮음이 싫지 않다.
엄마는 평생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다.
그래서 사랑하는 법을 몰랐다.
나는 그걸 “냉정함”이라 오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가 내게 퍼부은 그 수많은 말들 속에도
사랑이 있었다는 걸.
단지 표현할 줄 몰랐을 뿐.
내가 엄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는 늘 최선을 다해 살아낸 여자였다.
넘어져도 일어서고,
욕을 먹어도 버티고,
가난해도 나를 굶기지 않았던 여자.
그게 사랑이 아니면 무엇일까.
이제 나는 가끔
엄마가 그 시절 나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내 아이에게 한다.
“거짓말하지 마.”
“남의 물건 탐내지 마.”
“항상 인사 잘해.”
그 목소리 어딘가에
엄마가 숨어 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마음이 따뜻해진다.
요즘은 문득 이런 생각을 한다.
엄마가 나를 낳은 이유는 세상에
던져진 힘없고 약한 엄마를
내가 지켜주길 바라는
그분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때는 이해할 수 없던 그 모든 말과 행동들이
이제는 삶의 무게로 이해된다.
엄마의 나이가 되어보니,
그토록 원망했던 사람은
결국, 나와 같은 여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