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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알았다 엄마만의 사랑법을

by 은나무


엄마와 나는 사실 처음부터
세상에서 제일 완벽한 모녀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연은,
엄마에게 연이은 아들들의 죽음 끝에
비로소 내게 생명을 허락하신 그분의

계획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팔자 더러운 여자라 불릴 만큼
험한 길을 걸었던 엄마의 곁엔
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나였다.



만약 엄마에게 일말의 모성도 없었다면
동생을 입양 보내며 나만 데리고 살 이유는 없었을 것이다.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차라리 혼자 사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붙잡았다.



엄마는 어린 시절 나를 키우며
늘 남겨둔 작은 수첩을 가지고 있었다.



그 속엔 갓난아기 사진
두세 살 된 아기의 사진이 꽂혀 있었다.
어릴 땐 그게 내 사진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중에 커서 보니
그건 입양 보낸 남동생이었다.



엄마는 그 사진을 꺼내 보며 자주 울었다.
나는 그때 몰랐다.
엄마가 그 사진을 보며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걸.
내가 아이를 낳고 나서야
그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공부보다 더 중요한 걸 가르쳤다.

1. 거짓말하지 말기.

2.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말기.

3. 남의 물건을 탐하지 말기.

4. 어른들께 인사 잘하기.


그 가르침은 내 삶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새아빠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엄마는 나를 지키기 위해 억지로 나를 더 혼냈다.
그게 엄마의 방식이었다.
지금은 그 마음이 이해된다.



그때 내가 어쩔 수 없이 해야 했던 살림살이는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어디서든 손끝이 야무지다는 말을 듣고
살림도 누구보다 단정히 하는 사람이 되었다.



엄마는 새아빠가 병들고 내가 사춘기로 방황하던 시절
그토록 나를 혼내던 사람 같지 않게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경찰서, 학교, 시내 어딘가.
어디서 불러도 엄마는 늘 한걸음에 달려왔다.
“자식 잘못 키워서 죄송합니다.”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굽히며 사과하던 그 엄마.
그 자리에서 엄마는 늘 나를 대신했다.



그리고 나에게는
“힘들었지? 배고프지? 추웠지?”
하며 오히려 나를 걱정했다.
그 무섭던 엄마가
그때는 세상 누구보다 따뜻했다.



엄마는 늘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었지만
어린 나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버텼고 다른 누군가를 찾았다.
명절엔 그 핑계로 내게 와 며칠 머무는 시간을
진심으로 행복해했다.



나는 그때를 떠올리며 생각한다.
엄마는 나를 부려 먹으려던 게 아니라
그저 내 곁에서 쉬고 싶었던 거라고.
그게 엄마가 표현할 수 있었던 사랑의 방식이었다고.



엄마가 늘 술에 의지했던 건
그 하루를 버텨내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나 역시 술을 끊기 전엔 엄마만큼 삶은 아니었어도
매일 술을 찾았다. 그때 알았다.
엄마는 오죽했을까.



그 외로움 속에서 떠오른 유일한 사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딸, 나.
그런데 막상 전화를 걸면
서로를 상처 주는 말들만 오갔다.
그 말들 뒤에 숨은 엄마의 마음을 그땐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도 그때 많이 울었을 것이다.



나는 늘 되물었다.


“왜 나는 이런 엄마 밑에서 태어났을까.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야 하나.”


주변 사람들은 말했다.


“친엄마 맞아? 세상에 그런 엄마가 어딨 어.”


그 말들이 내 마음에 깊게 박혔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엄마는 처음부터 나를 자신의 전부로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그저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주는 법을 몰랐을 뿐이었다.



세상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그 시절
엄마에게 ‘다정함’은 사치였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만의 방식으로 나를 사랑했다.



세상에 자신의 것이 아무것도 없는 여자
그 유일한 하나가 바로 나였다.



그래서 엄마는 늘 말했다.
“내 딸이니까. 너는 내 딸이니까."

그 말은 결국 나는 너밖에 없어라는 엄마의 외침이었다.



이제야 안다.
그동안 나를 향한 엄마만의 사랑은 늘 뜨거웠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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