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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딸로 태어나, 그동안 고생 많았다.

by 은나무


엄마의 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엄마 주변이 정리되어 가면서 엄마의 얼굴빛도 달라졌다.


엄마의 얼굴은 사실 미인형에 가깝다.
작은 계란형 얼굴에 커다란 쌍꺼풀이 짙은 눈매,
아담하고 오똑한 코.
어릴 때 친구들이 내게 말했다.
“야, 너 엄마 닮았으면 진짜 예뻤겠다.”


엄마의 눈은 크고 선명했는데 나는 무쌍이다.
‘눈만 닮았어도…’ 하는 생각을 어릴 적 많이 했었다.


그런 예쁜 엄마의 얼굴은 삶의 고단함에 찌들어
본연의 얼굴이 지워졌다.
피부가 하얗고 곱다는 걸 목욕탕에 가서 처음 알았다.
밖에서 본 엄마는 새까맣게 타 있었고
얼굴엔 늘 인상을 잔뜩 쓴 주름이 잡혀 있었다.
이마엔 깊은 주름, 표정은 언제나 약간 찡그린 표정이었다.


한참 강원도 원주에 내려가 힘들었을 때는
이마 위에서부터 귀 옆까지 스트레스로 인한 탈모가 와서
얼굴 둘레 머리가 휑해 보였다.
정말 보기 안쓰러웠다.


엄마는 그런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감추려 짙은 눈화장을 하고 댄스 교실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옷을 입고
목과 팔에 여러 개의 장식구를 달고 다녔다.
그래도 엄마에게서 빛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의 환경이 달라지고 60 중반이 넘은 엄마의 얼굴이 조금씩 화사해지기 시작했다.
인상이 펴지고 댄스복 같은 화려한 옷은 잘 입지 않았다.
치렁치렁하던 액세서리도 간단하고 단정하게 바뀌었다.


그런 것들이 없어도
엄마는 이제 스스로 자신이 빛난다는 걸
알아가는 듯했다.


세상에 버려진 여자였던 엄마는
이제 세상이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걸 알아가는 듯했다.
엄마의 입에서는 불평보다 감사가
한숨보다 “기적 같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예전의 엄마는 받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여겼다.
엄마 생일을 깜빡하기라도 하면 호되게 불효녀가 되었다.
엄마는 내 생일을 자주 잊었다.
나는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그땐 가족에게조차 “오늘 내 생일이야”
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다.


그런데 39살 내 생일날 한 달 전부터 내 생일을 체크하던
엄마가 나를 원주에 불렀다.

엄마는 내게 맛있는 밥을 사주셨고 첫 생일선물과 편지를 주셨다. 봉투엔 현금과 엄마가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 한 장이 있었다.


봉투를 받는 순간
엄마의 꾹꾹 눌러쓴 글씨를 보는데 눈물이 터져 나왔다.
나는 엄마를 안았다.



엄마 품은 오래된 기억 속에서 이미 사라졌던 온기였다.
그 품은 많이 약해져 있었다.
엄마는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이제야 알게 되었어.

은정이, 네가 엄마 딸로 태어나 또래보다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는지, 니 나이에 겪지 않아도 될 일들을 겪으며
얼마나 버텼는지…
엄마가 너를 조금만 뒷받침해 줬다면
네가 이렇게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다른 친구들처럼 공부도 많이 하고,
좋은 학교도 갔을 텐데.

은정아, 엄마 딸로 태어나 고생 많았다.

그리고 잘 커줘서 고맙고
엄마 옆에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엄마가 이제 너를 실망시키지 않고
너의 엄마로서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어 보려고 해.
미안해 딸



엄마의 진심이 담긴 그 말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어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네가 나한테 해준 게 뭐 있어?”


“니년이 나 책임질 거야?”


“나이 먹어 병들면 쳐다도 안 볼 년이.”


“딴 집 딸들은 엄마 수시로 챙기고 여행도 데리고 다닌다는데 니년은 나한테 뭐 해줬냐.”


늘 술에 취해 상처만 주던 엄마가 그날은 내게
처음으로 미안하다 말하며 생일선물과 편지까지 주었다.


그간 쌓였던 미움과 서운함이
눈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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