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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 살 엄마의 달라진 일상

by 은나무


엄마는 이제 주일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새색시가 되었다.



그날이면 제일 먼저 장롱 앞에 앉아 옷장을 연다.
가장 예쁜 옷을 골라 들고 거울 앞에 앉아

천천히 화장을 한다.
이제는 짙은 화장 대신 하얗고 고운 피부에 은은한 분, 반짝이는 립글로스 한 번이면 충분하다.



작은 가방 안에는 늘 사탕 한 줌.
누구를 만나도 “수고 많으시죠?” 하며 나눠줄 마음의 여유가 거기 담겨 있다.
신발끈을 단단히 묶고 현관문을 나서면,
엄마는 이미 설렌 얼굴이다.
교회 버스가 도착하기 전에 미리 나와
정류장 옆 벤치에 앉아 햇살을 받으며 기다린다.



버스가 도착하면,
기사님과 인사하고 교회에 도착해서는
맞이하는 이들에게 환하게 웃으며 사탕을 건넨다.
“고생 많으시죠, 이거 드세요.”
엄마는 그 일이 그렇게 행복하다고 말했다.



나는 한때 믿었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고쳐 쓸 수 없는 존재라고.
하지만 지금, 나는 안다.
변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엄마가 그 증거다.
평생을 울며 살던 사람이 이렇게 밝고 온화해질 수 있다는 걸
나는 내 눈으로 보고 있다.



엄마는 아픈 다리를 이끌고 끝까지 일을 했다.
내가 “엄마, 이제 그만 일해. 이제 쉬어요.” 할 때마다
“아직은 괜찮다, 할 수 있을 때까지 해야지.” 하셨다.
병원을 오가고 약으로 버티며 일하시던 엄마는
결국 의사 선생님의 강한 권유로 일을 그만두게 됐다.



엄마는 서운해했지만, 나는 솔직히 너무 기뻤다.
이제는 정말 쉬어도 된다고,
이제는 당신 몫의 평화를 누려야 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엄마는 올해 일흔 하나.
칠십까지는 일터에서 버텼고,
지금은 올겨울부터 드디어 쉬고 계신다.



요즘의 엄마는 만날 때마다
손에 아이들 용돈을 쥐여주고,
“영재 옷은 있어? 많이 커서 또 사야지?” 하며 옷을 사주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하는데 그때마다
엄마는 그동안 나를 위해 해준 게 없다며 내게 얹어 주신다.
그 마음이 너무 감사해 기쁘게 받는다.



예전의 엄마였다면 일을 그만둔 지금
앞날의 불안과 걱정에 잠도 못 주무셨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엄마는 많이 달라졌다.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고,
그래도 여전히 남은 불안을 덜어내기 위해
나와 함께 정신건강의학과를 다니며 치료를 받고 계신다.
그게 이제 부끄럽지 않다고,
“이제는 나도 좀 고쳐 써야지” 하며 웃으신다.



엄마는 집 앞 복지관에서
웃음치료 교실, 난타 교실, 컴퓨터 교실에도 등록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하더니
이제는 친구들과 사진을 찍어
내게 “은정아, 봐라 이거 봐라” 하며 자랑하신다.
손에 들린 작은 악기와 밝은 표정이
화면 속에서도 빛이 났다.



좁고 허름한 원룸방에서
술친구들과 다투며 신세한탄하던 엄마는 이제 없다.
이젠 깔끔한 새 아파트의 창문을 활짝 열고
햇살을 맞으며 커피를 드신다.
그 모습이 참 좋았다.
숨 막히던 세월 끝에, 엄마가 이렇게 새로이 웃을 수 있다는 게 기적 같았다.



요즘 엄마는 성경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처음엔 조금씩 읽으시며 어렵다고 하시더니 끝까지 읽어 내셨고 지금은 올해만 벌써 다섯 번을 완독 하셨다.
성경 구절을 외워서 내게 알려주며,
“은정아, 네가 흘린 눈물이 나를 살렸어.”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제는 엄마의 기도와 눈물이 나를 살리고 있다는 걸.



엄마는 여전히 내 곁에 계시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엄마를 걱정하지 않는다.



그분과 함께 계신 엄마의 오늘이
그 어느 때보다 평화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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