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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장녀 생존일기(1)

[별밤 작가]

by 은나무


(1. 혈당 스파이크로 술고래 때려잡기)

나는 삼 남매의 장녀.
언제부터인가 명절에 자연스럽게 우리 집에 모이더라.


내 동의를 구한 적은 없다. 말 그대로 통보.


가정을 이룬 여동생과 남동생 부대는 명절에 와글와글이다.


- 점심은 배달, 저녁은 외식, 다음날 아침은 떡국


친정 엄마는 어려울 것 없다며
내가 애 셋을 데리고 이동하는 것보다 그들이 오는 게 훨씬 낫다고 이미 나 없이 결정해 놓고 내 눈치를 본다.
아니, 눈치 보는 척한다.


맞다.

어차피 모일 거라면 그리고 대부분 사 먹는다면 괜찮다.


문제는 술이다.
아니다.

술은 가끔 그렇게 마실 수 있지.
진짜 힘든 건 그들이 밤을 새운다는 것.


명절에 모이면 오랜만이라는 명목 하에 점심부터 술을 마셔댄다.


신이 났다.

그렇게 점심에도 저녁에도 마시다 보면 술이 그들을 지배한다.


이 얘기 저 얘기하다 보면 밤이 깊어지고
새벽 1시, 2시, 3시를 넘어가면
가뜩이나 내향인인 나는 기가 빨린다.


속 얘기를 털어놓다 남동생은 화를 내고, 올케는 서운해하고, 내 남편은 말리고. 나는 위로하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저기서 와글와글 우당탕탕 뒤죽박죽
그렇게 동이 트면 그들은 모두 잠이 들고
잠이 들락 말락 할 때 아이들은 비로소 깬다.


이 루틴에 몇 번 데고 나니 명절에 만나는 게 꺼려졌다.

이번 명절에도 친정 엄마는 통보.

또 피곤해질 생각을 하니 머리가 아파 짜증이 났다.

당일, 친정엄마가 눈치 보며 사온 반찬들로 점심에 술상이 차려진다.


1차는 막걸리.

저녁은 고깃집에 가 맥주와 소주를 섞어 마신다.


그들은 (내 남편 포함) 신이 났다.

3차로 치킨집에 가 하이볼과 맥주를 마신다.


이미 블랙아웃일 텐데 더 마신다며 비틀비틀


이대로는 또 밤샘 각.


안 된다.

졸리다.

다음날 아침 먹고 바로 시댁도 가야 한다.


라면 끓여서 술이랑 먹겠다는 이들에게 상냥하고 친절하게
분모자를 추가한 엽떡을 주문해 준다.

18,000원 아깝지만 과감하게 투자했다.


엽떡 도착!


- 마시따 최고다 고마워

와구와구 먹던 그들은 집에서 술도 한 잔 마시지도 못했는데
혈당 스파이크가 와서 그대로 12시 전에 잠이 들었다


성공!


다음날 아침 그들은 기억하지 못한다.


이렇게 무사히 명절을 넘긴다.


크레이지 코리아 장녀는 보통이 아니다.
덤벼라, 동생들아!



저자 소개


극내향인. 삼 남매의 장녀이자 삼 남매를 키우는 40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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